여전히 겨울이다. 아침저녁으로 매우 쌀쌀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낮의 양지로 나가보면 이제는 제법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데, 아직 나의 두 손은 호주머니 속에서 나올 줄 모른다.
오늘도 나의 두 손은 호주머니에서 나올 줄 몰랐다. 퇴근길 에어팟을 켜고 노이즈 캔슬링을 통해 세상과 단절 한채 내 공간을 만들고 이미 만원이 되어버린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짝수층'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당도했고 나와 어떤 아주머니 두 명이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아주머니는 나보다 높은 층을 누르고는 정말 '티'가 나게 엘리베이터 버튼의 반대편 모서리로 곧바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왠지 그 아주머니는 나보고 '네가 갈 행선층을 누르고 난 뒤에, 꼭 닫힘 버튼 눌러!'라고 명령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 행선지만 누른 뒤 곧바로 맞은편 모서리로 이동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핸드폰을 보았다. 약 1초 정도의 적막이 흘렀을까?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나를 기분 나쁜 눈으로 바라보며 황급히 엘리베이터 문 앞쪽으로 이동해 '닫힘' 버튼을 꾹 누르고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내가 별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내가 내린 후, 그녀는 닫힘 버튼을 누르며 닫혀 가는 문 사이로 이상한 말과 욕을 섞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상황을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복도길에서 무슨 상황인가에 대한 복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나는 그녀가 자신의 행선층을 누른 뒤 보여준 행동에서 그녀가 나에게 했던 '기대'를 어렴풋이 그 당시에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분께서는 아예 대놓고 나보고 "늦게 들어왔으면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게 매너 아니에요?"라고 이야기를 하시길래, 나 또한 웃으면서 "지금 저보고 이야기하신 건가요? 그런 매너를 저는 배우지 못했네요^^;" 라며 맞받아 쳤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물론 기대는 할 수 있다. 바람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대와 바람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안 하고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언가 해주길 바라는' 태도는 매우 불쾌했었던 경험이었다.
두 번째,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어차피 잠시 기다리면 문이 닫힐 것이고, 만약 필자가 급한 상황이었다면 내가 알아서 눌렀을 것이다. 왜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을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Rule과 기대대로 내가 움직여주지 않아 화가 난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내가 그녀에게 해를 가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의 자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녀가 요청하지도 않은 것을 관심법으로 읽어서 '닫힘'버튼을 눌러주는 것도 너무 웃기지 않은가. 물론 그녀가 요청했어도 나는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곱씹어 생각해 보니 이번 엘리베이터 내 '닫힘' 버튼 사건은 필자의 직장 내 기출 변형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정확한 인풋을 주지 않으며 기대치만 많은 여러 사람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내 눈치'를 총 동원하여 그들이 기대하는 아웃풋을 최대한 맞춰 주려고 하고 있다. 그래야만 팀으로서 아웃풋이 잘 나올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직장 내에서 나의 존재 이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니깐.
사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헛된 기대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가깝게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명분 하에 그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강요한다던가, 정리정돈이 아직 어려운 와이프에게 청소를 좀 더 잘해보라고 한다던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앞서 이야기한 아주머니와 다른 점은, '모르는 사람'에게 까지 나의 기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보다 나이 드신 그분께서는 나에게 보여준 그 행동이 얼마나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지 아마 모를 거다.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암묵적 룰을 내가 안 지켰다며 오히려 그녀의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나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불손한 언행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분명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게 확실하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