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 곁에 있다 가는 거야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물건들이

by 빛담

"네, 사장님. 입금 확인되셨죠?"

"네네"

"네에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지난 10년간 타오던 내 첫차 아방이(아반떼의 별칭)를 오늘 떠나보냈다. 차량 판매 플랫폼에 차를 올린 지 정확히 1주일이 되는 오늘 이었다.


나와 와이프는 입금 완료가 되었음에도, 우리 손을 떠나는 첫차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아방이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의 소중한 발이 되어주던 친구였는데...


"빛 프로, 운전 못해? 왜 애랑 와이프를 제주도에서 차량도 없이 고생시키나?"

"빛 프로, 운전하기 싫은 그 맘 아는데 그래도 저렴한 중고차라도 사서 운전은 해야 할 거 같아"

"빛 담아, 사촌형으로서 나도 운전하기 싫은 네 심정은 알아. 그렇지만 가족이 불편해하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거야."


10년 전쯤, 필자의 큰딸은 이제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맘때도 우리 가족은 '우리 집'이 없었다.

장모님께서 많이 신경 써 주셔서 우리는 장모님 댁에 더부살이를 하는 중이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딘가 식사자리로 이동할 때도 면허만 있던 나를 대신해서 장인어른께서 운전대를 잡으시곤 하셨다. 눈치가 없던 나는 장인어른이 운전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아울러 그 당시 친인척들 경사를 비롯하여 조촐한 가족 모임 등이 있어 시골에 내려갈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에는 아버지께서 '손수' 차를 이끌고 장모님 댁까지 오셔서 우리 가족을 태우고 시골까지 운전을 해 주시곤 하셨었다.

참석한 모임에서 나와 항렬이 같은 사촌형들은 필자를 향해 '아직도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좋은 말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곤 하셨다.

그때 문득 깨달음이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제는 연로하신 모습이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차를 운전해야 된다고 말씀 안 하셨을까..? 차량 사는 돈도 아껴 집을 사라는 뜻이었을까?'

그 이후 나는 장인어른과 아버지께서 차량 구매와 운전의 필요성에 대해 왜 이야기를 안 하셨을지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앞서 생각했던 차보단 집이 우선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운전하는걸 평소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 부담이 될까 봐 말씀을 안 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친척 모임 이후에도 당해년 가족끼리 놀러 간 제주도 여행에서 우리는 '뚜벅이'로 즐겁게 여행을 다녔다. 큰애가 아직 어려 유모차가 필요했으므로 대중교통 이용 시 버스 짐칸에 유모차를 싣고 제주도를 돌아다녔었다.

회사 출근한 날 제주도 여행이 어땠냐는 동료의 질문에 '대중교통 타고 잘 다녀왔어요'라고 대답을 하였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사촌형의 말처럼 많은 동료들이 이제는 차도 사고 운전도 해야 할 나이가 된 거 같다고 나에게 화력을 집중해 잔소리를 퍼부어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그날 이후 우리는 차량을 구매하여 운전을 하자고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 떠나버린 아방이를 나름 중고차 사이트에서 '무사고', '저렴한 KM 수'등을 중점적으로 체크하여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이었다.

키로수가 매우 적은 차를 골라 외관도 참 잘 관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나에겐 첫차' 였기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흠집 난 곳이 있나 살펴보기도 하고, 운전하지도 않을 건데 괜스레 차에 시동도 걸어보며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첫차에 '반했었던' 것 같다.


처음 하는 운전이었지만 단순하게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평소 이동하는 경우와 비슷했었다. 천천히 욕심 안 부리고 나와 와이프 그리고 첫째 아이와 집 한 칸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장모님과 함께 주말이 되면 이곳저곳 자주 여행을 다니곤 했었다.

'왜 빨리 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차량을 이용해 이동 간 시간을 절약하는 것에 매우 만족했다. 이제 차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신중히 골라 데려온 우리 차도 점차 나이를 먹으며 빛을 바래기 시작했다.

처음 운전이 미숙하여 차량 앞쪽 및 조수석 옆쪽 공간감을 알 수가 없어 나 홀로 주차장 벽을 박은 적도 있고, 우리 와이프도 운전을 이제 해보겠다며 홀로 지하주차장을 내려가던 중 조수석 쪽 문에 큰 흠집을 내어 외관이 크게 상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 감가가 이미 많이 진행된 차량의 외관 수리를 위해 카센터를 향했지만 대부분 '그냥 타다 폐차하세요'라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었고, 수리비용 또한 우리가 생각했던 예산보다 매우 높았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외관상태는 관리되지 않기 시작했고 급기야 우리가 실수로 어딘가 긁은 것인지, 누가 우리 차를 긁고 그냥 간 것인지 구분이 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 이후로 가족 구성원이 한 명 더 늘어나게 되었고, 첫째 둘째 딸들은 차량 뒷좌석에서 그들의 위력을 십분 발휘했다.

우리는 차량 안에서 시끄럽게 우는 걸 막기 위해 과자들을 차량 안에서 먹는 것을 허용했고, 가뜩이나 가죽시트도 아니었던 우리 차량의 뒷좌석은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시트의 오염상태가 계속 심해지고 있었다.


결국 나 또한 차량 외관관리나 정비 및 수리를 포기하고, '운행'이 있을 때에만 차량을 운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차량을 이제는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모먼트가 발생했다.

아방이를 데려온 지 10년째 되는 올해 겨울, 우리 가족은 경주여행을 다녀왔었다. 오랜만에 아방이를 타고 장거리 운전을 하는데 나름 즐거움을 갖고 편안하게 잘 다녀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차량을 타고 행선지로 향하는 도중 다소 덩치가 큰 아빠의 운전석 뒤로 우리 아이들이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자기도 이제는 키가 커져서 무릎 공간이 너무 좁아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이 부분은 외관상의 문제가 아닌, 우리 아이들의 체격이 커짐에 따라 발생된 차량 크기의 한계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제 우리 차를 떠나보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차량 판매 플랫폼에 우리 차를 판매하겠다고 요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량 감정평가사가 우리 차를 점검하러 오셨었다. 아주 꼼꼼히 사진도 찍고 차량을 점검하시더니 외관도 그러하고 미션도, 엔진 소리도 그다지 상태가 좋지 못해 좋은 감정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 주셨다. 다 내가 차를 관리하지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값어치로라도 우리 차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수 있어 기뻤다. 오늘 아방이가 떠나면서 나에게 '그동안 고마웠어요 주인님' 하며 손을 흔들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 아방이와의 인연은 '오늘까지'로 끝이 나고 말았다.


지금은 새로운 차를 찾아보고 있다. 역시 중고차다. 새 차를 사볼까 했지만 들이는 돈에 비해 만족도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10년간 차량을 한번 운행해 보니 나와 우리 와이프는 차량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큰 잔고장 없이, 우리 가족의 발을 책임져줄 차량을 물색 중이다.


생각해 보면 떠나보낸 아방이도 그렇고, 새로 올 차량도 그렇고 언젠가는 우리 손을 떠날 친구들이다.

그뿐만 이겠는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가족, 친구, 동료들 등 결국 우리는 누군가 운행하는 버스에 잠시 승차하는 것이다. 버스는 시점과 종점이 무조건 있는 법.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버스에 잠시 탑승했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야 할 운명인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탑승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버스 드라이버 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가 운행하는 버스에 탑승도 했다가 자유로이 내리고 가끔은 내렸던 사람이 다시 탑승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언젠간 끝이 있는 관계다'라고 생각하고, 내가 버스운전대를 잡고 운행하는 동안 탑승한 손님에게 최대한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헤어질 때 아쉬움이 없도록 말이다.


버스에서 아쉽게 하차한, 첫차에게 정말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중에 우리 도로에서 우연히 만나면, 그때 꼭 내가 알아보고 아는 척해줄게! 너무 고마웠어 우리 아방이."


IMG_5175.JPG 다음 탑승고객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