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잠시 혼자 살아볼게

by 빛담

2025년 10월의 달력은 많은 직장인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했다.
지나고 나서도 이만큼 길게 쉴 수 있는 연휴는 당분간 없을지도 모른다.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평일 이틀만 비우면, 무려 11일의 여행이 가능했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저 내가 쉬겠다는 건데도,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일’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을. 평일에 휴가를 내거나, 조금 일찍 퇴근하려 해도, 나는 늘 회사에 메인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집에 와도, 마치 내 집에 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나는 늘 겉도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진짜 쉴 수 있는 공간은 자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어두운 ‘이불 속’이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이번 연휴는, 회사에 나가지도 못하고, 양가 부모님댁을 오가며 남은 날들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막혔다. 어딘가, 나만의 공간이 간절했다. 연휴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 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걸 생각하니, 어쩌면 내 안에서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네이버 항공권 예약 페이지를 열고,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일정을 수도 없이 검색했다. 예약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기를 반복했다. 정말 떠나고 싶었지만,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유심히 보던 아내가 말을 건넸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 병난다. 혼자 여행 다녀와도 돼. 미안해할 거 없어.
우리 잘 지낼 수 있어. 편히 다녀오고, 뭐 정 그렇게 미안하면 여행한 거 글감으로 좀 써오면 좋을 것 같네.”


그 말이 참 신기하게도, 마음을 놓이게 했다. 내가 그렇게 찾던 ‘이 여행의 당위성’이 아내의 한마디로 생겨났다.
그 순간, 이 여행이 단지 도피가 아니라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함과 함께 떠나고 싶은 갈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에,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킨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그래, 홀로 여행을 가보자.’


결심이 서자 곧 ‘어디로 갈 것인가’가 고민이 됐다. 국내라면 동해나 제주가 떠올랐지만, 동해는 이정도로 긴 연휴를 감당해낼 컨텐츠가 없다는 판단이 먼저 들었고, 제주도는 숙박비와 렌트비가 부담이었다. 게다가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긴 연휴 렌트카보다 마이카를 이용할 심산 이었지만 그를 위한 차량 선적도 이미 마감되어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도시, ‘교토’.

오래전 다녀온 기억이 있는 곳. 일본 전통과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도시. 열흘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풍성한 볼거리와 고요한 생각거리가 있는 곳. 그리고 지금, 일본어 능력시험에 매번 응시하며 한국어 다음으로 편안해진 언어가 바로 일본어라는 점도 한몫했다.

교토, 이보다 이번 여행에 더 잘 어울리는 목적지는 없었다.


그렇게 모든 조건이 갖춰졌지만, 여전히 내 마음엔 질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왜 이 여행을 가야 하는가.’

아내는 허락했지만, 항공권과 숙박, 교통비와 체험비까지 결코 적지 않은 비용. 그런데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채, 며칠 동안 예약 페이지를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그때, 다시 떠올랐다. 아내가 내개 했던 말.


“뭐 정 그렇게 미안하면 여행한 거 글감으로 좀 써오면 좋을 것 같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던 그 순간이, 결국 이 여행의 출발선이 되어주었다. 다시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고, 가장 저렴한 왕복 항공권을 예매했다. 이제서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 것 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사진 촬영의 비중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늘 도보 중심의 사진 투어를 하곤 했지만, 이번엔 기록과 콘텐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이미 내 구글 포토에 충분할 만큼 쌓여 있다.

이젠 ‘찍었다’는 증명보다는, ‘살았다’는 실감이 담긴 순간들을 남기고 싶다. 교토의 평범한 골목, 느릿한 오후, 사람들 틈에 섞인 짧은 숨결들. 이번에는 그런 소소한 시간들을 천천히 담아볼 참이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저 처음으로, ‘나 혼자 조용히 살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하며 그에 따라 차차 기록 콘텐츠도 사진과 함께 채워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결혼 후에도 나는 늘 누군가와 함께였다. 그래서 오히려 ‘함께’의 소중함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늘 예민하게 남 눈치를 보며, 어울리는 법을 배워온 내 삶이었다.


이번 여행이 끝날 즈음엔,

‘혼자 살아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이 여행을 천천히, 즐겁게 시작해보려 한다.


はじまりはいつも少しの勇気から。“시작은 언제나, 조금의 용기에서 비롯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