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혼자 살아보기로 결심한 지 두 달, 항공권을 예약했던 날이 벌써 아득하다.
그 사이 나는 꽤 바빴다. 회사 일도 많았고, 뜻하지 않은 인간관계의 마찰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난 두 달은 일본어 능력시험(JLPT N2)을 준비하느라 매일을 바쁘게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 끝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올해 10월의 교토를 어떻게 채워나가고 싶은지, 다시 정리해보자.”
그래서 오늘, 조용히 노트를 꺼내어 이 여행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 목록에 나는 제목을 붙여 보기로 했다.
‘버킷리스트 – 교토에서 나에게 해 주기로 한 것들’
이번 여행은 길다.
그러니 예전처럼 연신 셔터만 누르며 다니고 싶진 않다.
3년 전, 오사카를 2박 3일로 다녀왔을 땐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는 것도 잊고 풍경만 담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고 싶다.
교토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카모가와 강변. 그곳에서 흘러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 속의 한 사람이 되어 조용히 앉아 있으려고 한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어보는 것.
한국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었다. 나도 공감한다.
우린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해내야 칭찬받는 법’을 배워왔고, 그래서 쉬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그리고 이번 버킷리스트를 통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를 배워보고 싶다.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여행 와서까지 달리기를 해야 해?”
그런데 요즘은 알 것 같다.
나도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걷는 속도와 달리는 속도가 세상을 다르게 보여준다는 걸 안다.
달리는 동안 흘리는 땀, 그리고 주변 풍경이 순간순간 스며드는 느낌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온몸에 퍼진다.
이번 교토 여행에서도, 이 도시를 온전히 느끼기 위한 방법으로 '달리기'는 분명히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거야 말로 여행의 기본 아니야? 먹으러 가는 거지.”
하지만 내겐 꽤 큰 도전이다.
나는 식탐이 없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효율적인 소비를 중시해왔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줄을 서며 기다리는 게 낯설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
누군가가 “이곳은 정말 현지인들도 기다리는 곳이에요”라고 하면, 나도 한 번쯤 줄을 서볼 생각이다.
음식을 맛보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마음을 맛보는 것.
나로서는 꽤 낯선 경험이지만, 그만큼 기대가 된다.
5월에 도쿄 츠타야 서점에 다녀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을 읽는 사람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
그 풍경이 참 따뜻했다.
나도 교토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보고 싶다.
일본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어보고, 짧게라도 ‘현지 언어로 소통되는 세상’에 나를 담가보는 것.
지금까지는 시험을 위한 일본어였지만, 이젠 그 언어로 '살아보기'를 해보고 싶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슬램덩크 같은 익숙한 애니메이션도 좋고, 카모메 식당처럼 잔잔한 일본 영화도 좋다.
자막 없이, 현지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경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 될 것 같다.
얼마 전 <일일시호일>이라는 일본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
다도라는 느리고 정적인 행위를 통해 인생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지루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푹 빠져서 봤다.
교토는 일본 다도의 중심지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건물과, 고요하게 이어져온 문화.
그 속에서 다도를 체험해보고 싶다.
차를 마시는 법이 아니라,
차를 기다리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
그 속에서 나도 내 삶을 조용히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밖에도,
교토 분위기가 가득한 카페를 골라 다니는 일, 지나가는 연인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작은 챌린지, 전에 가보지 못했던 명소를 다시 찾는 일 등도 조용히 버킷리스트에 적어두었다.
그중에서도 연인 스냅 챌린지는 잘할 수 있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 괜찮다. 용기를 내도 좋고, 안 내도 좋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 그저 이번 여행이 긴 여정이 될 예정이기에, 버킷리스트를 조금 더 촘촘히 적어두고 싶었을 뿐이다.
이번 여행까지는 아직 3개월 남았다.
지금은 도화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진심을 다해 이번 나홀로 교토 여행이라는 도화지에 채색해 볼 생각이라는 것.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것 같다.
心のままに、歩いていけばいい。"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