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 앞으로 다가온 교토 여행.
요즘은 문득문득, 정해야 할 것들과 알아봐야 할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아주 까마득한 이야기 같지만, MBTI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을 나누는 방식은 혈액형이나 사상의학처럼 단순했다. 지금은 훨씬 다양한 성격 유형 테스트가 있지만, 그 어떤 테스트에서도 나는 늘 ‘계획형’, 소위 슈퍼 J로 분류되곤 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그랬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 영어는 몇 점, 수학은 어느 수준, 내신은 몇 등급 이상… 나름 디테일한 목표를 세우고, 현실 가능한 계획을 짜는 데 익숙했다.
비록 그 계획들이 실제로 실천된 경우는 적었지만 말이다.
슈퍼 J의 절정은 군 시절이었다.
장교로 복무하며 시간 관리, 부대 통솔, 훈련 계획 등 거의 모든 일이 ‘계획’에서 출발했다.
그 안에서 나는 나름의 강점을 발휘했고, 동료들도 내 계획에 큰 불만 없이 따라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내가, 한 달 전쯤 10박 11일의 교토 여행을 앞두고 숙소를 ‘대충’ 정해뒀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에 계속 걸렸다.
교토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외곽 민박에서만 살아보는 것. 과거의 나였다면 충분했겠지만, 이번엔 조금 달라져 보고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사진 찍는 여행자’가 아니라, ‘교토에 살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여행 중 숙소를 자주 옮기지 않는 편이다.
혼자든 가족이든, 이동의 번거로움과 체크인·체크아웃 사이의 공백 시간, 정든 공간을 떠나는 감정 같은 것들이 늘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하기로 했다.
교토의 다양한 얼굴을 조금 더 깊이 느껴보고 싶었기에, 숙소를 세 곳으로 나누어 ‘잠시 살아보기’를 결심했다.
첫 번째 숙소는 앞서 말했던 ‘대충’ 정해둔 그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충이라기보다, 교토역까지 도보 10분이라는 접근성을 우선으로 고려한 곳이다.
야마노하시다테나 이나후네야 같은 외곽 소도시로 향하기 좋고, 자전거나 러닝 같은 액티비티를 하기도 좋은 위치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숙소 내에서 취사가 불가능했고, 다른 여행자들과의 교류도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저 평소처럼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엔 적합했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숙소에서도 머물러 보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숙소는 카모가와를 기준으로 좌측, 니조성 근처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다.
기요미즈데라나 산넨자카 쪽, 그러니까 교토의 ‘우측’은 이미 두 번이나 가봤지만, ‘좌측’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교토의 또 다른 면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머물러보고 싶어졌다.
게다가 내가 재밌게 봤던 일본 드라마인,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 키요짱이 자주 장을 보러 다녔던 니시키 시장도 들러볼 예정인데 숙소와 꽤나 가까운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곳에서 식재료를 사 요리도 해볼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마지막 숙소는 내가 교토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고조자카 인근이다. 기요미즈데라로 이어지는 천년의 길.
사실 내가 교토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곳은 게스트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러운 구조에, 상주 호스트와의 일본어 소통도 가능하다는 후기를 읽었다.
평소 같았으면 ‘혼자 조용히 사진 찍기 좋은’ 숙소를 골랐겠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혼자 쉴 수 있는 객실과, 욕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소규모 게스트하우스.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면서도, 원한다면 타인과 스치며 여행할 수 있는 공간.
왠지 모르게, 이번 교토에서는 이런 곳이 더 끌렸다. 다소간의 불편함이 따를 수 있겠지만,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세 곳에 나누어 머물기로 한 뒤, 나는 숙소를 중심으로 교토를 3분할해 살아보는 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 첫 번째 숙소에서는 외곽 소도시 탐방을,
• 두 번째 숙소에서는 니조성과 니시키 시장 주변을,
• 마지막 숙소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조자카 골목을 오래 걷기로.
결국, 숙소는 이렇게 정해졌다. 이제는 그 숙소들을 중심으로, 여행의 디테일을 채워나갈 차례다.
물론, 나는 아마 앞으로도 여행 전에는 이렇게 피곤할 것이다.
계획하고, 비교하고, 다시 결정하는 일을 반복하며 머리를 굴릴 것이다. 슈퍼 J로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계획형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피곤한 과정 속에서도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루트를 벗어난 자유는 생각보다 작고 소박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는 것.
그것이 슈퍼 J로서, 그리고 나로서 여행을 대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決めることも、手放すことも、旅の一部。"결정하는 일도, 놓아주는 일도, 여행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