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와이드 패스, 나의 현실적 로망

by 빛담

타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진 여름이었다. 작년도 더웠지만, 올해는 그보다 더 뜨거웠다. 이 여름의 끝은 도무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절기상 입추를 지난 지금, 공기 속 흐름이 서서히 가을을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지금도 미스터리한 일이지만, 예전 우리 조상님들은 어떻게 지금의 AI로도 예측하기 어려운 절기를 그토록 정확히 맞출 수 있었을까?
이렇게 더위가 한풀 꺾여 간다는 건, 10월 교토로 향하는 나의 여정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행 전 필수 과제였던 항공권과 숙소는 이미 예약을 마쳤다. 여행의 방향성도 어느 정도 확정했다.

사진 촬영이 주요 목적이지만, 가능하면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체험 위주의 여행을 하기로 한 결심 역시 그대로다. 이제는 확정된 숙소와 방향성에 맞춰 세부 일정을 채워 넣을 시간이 도래했다.

일본 여행은 우리에게 참 익숙하다. 오죽하면 방일 관광객 중 ‘큰손’이 한국인이라는 말이 있을까. 나 역시 그 안에 포함될 것이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일본을 찾는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적응이 안 되는 게 있으니, 바로 ‘서비스 물가’다.


일본의 식비나 공산품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엔저 영향으로 오히려 저렴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서비스 요금만큼은 여전히 비싸다. 그중에서도 여행객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건 ‘교통비’다. 현지인들도 교통비가 너무 비싸다고 여겼는지, 오죽하면 단기 여행자를 위해 별도의 교통 패스를 판매할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을 갈 때마다 여행 동선과 관광 경로를 고려해 교통 패스를 반드시 구입한다.

이번에는 어떤 교통 패스를 선택하는게 나을지가 숙제로 남아있었다.


우선 일정과 관련된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엔 무려 10박 11일. 꽤나 길고 넉넉한 일정이다. 3년 전 오사카로 홀로 떠났던 2박 3일 여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여유다.

하지만 여유가 많다고하여 교통패스를 선택하는 측면에서 고민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지난번에는 ‘간사이 미니 패스’를 사용했다. 일정도 2박3일로서 패스 이용기간하고도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미니패스는 무려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를 잇는 JR 일부 노선을 3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였다. 단순하게 공항에서 교토까지 왕복 요금만 해도 패스 구입 가격에 맞먹았기에, 매우 만족도가 큰 교통 패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주로 교토에 머물 예정이라 미니 패스로는 이동 범위가 한정된다.

교토 내부 이동은 버스가 유리한데, 해당 미니 패스로는 이용할 수 없다. 게다가 교외로 나가려 해도 여전히 사용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쩔수 없이 간사이 미니 패스를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교통패스 구매 선정을 위해 다음으로 고려한 부분은 여행지 선정 이었다.

이번 여행 일정이 넉넉하다 보니, 나는 평소 가보지 못했던, 교토로부터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교외 지역에 눈이 갔다. 그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이네 후네야’다. 이곳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사진으로 부터였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 마치 일본 중세 시대를 옮겨놓은 듯한 해안가 가옥들. 사진속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내 시선을 뺏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도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올해 3월에도 교토 여행을 계획하며 이곳을 후보에 넣었지만, 여행 자체가 취소되며 방문하지 못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강하게 마음이 끌렸다. 이번 여행에서는 좀 더 욕심을 내어 1박을 하고 싶었지만, 숙소가 흩어져 있어 캐리어를 계속 들고 다녀야 하는 문제로 결국 당일치기로 계획하게 되었다. 교토역에서 편도로 무려 3시간, 하지만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이렇게 교외 여행지, 이네후네야 방문을 포함하기로 하자, 필요한 교통 패스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바로 ‘간사이 와이드 패스’. 현지 가격은 12,000엔으로 비싸지만, 4박 5일간 일부 신칸센을 포함한 JR 서일본 전역 철도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교토역에서 이네 후네야까지 왕복 요금만 해도 패스 가격에 가깝다는 점이 구매를 결정짓는 큰 이유가 됐다.


패스를 구매한 후, 첫날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5일 동안은 주로 교토 근교와 교외를 다니기로 했다. 첫 번째가 앞서 이야기 했던 이네 후네야, 그리고 검색 중 알게 된 또 다른 명소 ‘오카야마 구라시키’가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그외 남은 일정간 방문할 장소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아마 출국 전이나, 아니면 현지에서 발길 닿는 대로 정하게 될 것이다.


여행 정보는 이제 ‘홍수’ 수준이다. 미디어뿐 아니라 여행 관련 콘텐츠도 매일 쏟아진다. 덕분에 여행자들은 손쉽게 방대한 정보를 얻지만, 특히 나 같은 J 성향 여행자는 ‘정보를 찾다 지쳐버리는’ 순간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찾아보고,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 여행은 비로소 완성되어 간다. 어쩌면 여행의 가장 설레는 ‘고점’은, 떠나기 전 무엇을 해볼지 고민하고 계획해보며 설레임을 찾아가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여행의 고점이 출국 전의 설렘이라면, 현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은 묘하게 온도가 내려간다.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시점부터는, 계획표 위에서 반짝이던 일정들이 하나씩 실제로 소모되기 시작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 공항에 서서 원래 살던 곳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릴 때면, 이미 지나가버린 여행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재생된다.

그때마다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그 여운이 다음 여행을 부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 여정만큼은, ‘조금만 더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발길과 시선이 닿는 모든 교토에 정을 붙여볼 생각이다.


今、この瞬間も旅の途中。"지금, 이 순간도 여행의 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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