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도 다 돈이다.

by 빛담

"뭐? 결국 돌아가셨어? 음, 알겠어. 이따 대전에서 봐"

최근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필자가 요 근래 거주하고 있는 집에 대해 이사를 고민하고 있기에, 사실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몇 달 전 나에게 이야기해 주셨던 막내 작은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연락하셨던 것이었다. 사인은 암. 향년 54세, 세상을 작고하시기에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이셨다.

작은아버지는 살아생전 호인이셨다. 비록 본인도 넉넉지 못한 삶이셨으나, 필자의 자녀 백일상 및 돌잔치에는 빠짐없이 참석을 해주셨고, 오며 가며 다 큰 성인이 된 나를 보고도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만원 한 두장을 꺼내 아이들 간식 사주라고 용돈을 주시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셨다. 그렇게 부고소식을 들은 채 인생무상함을 느끼며 두어 시간을 달려 대전의 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는 현생보다 넉넉하게, 편히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고인을 향해 향을 피우고, 명복을 빌었다. 이제 서른도 안된 상주, 고종사촌 남매와 맞절을 하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렇게 인사를 한 뒤 참담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과 형,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지만 작은아버지의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인의 살아생전 지인분들과 그의 가족들의 사람들이 고인을 추모하러 오는 것이 보통인지라 생전 뚜렷한 직업 및 직장 없이 일용직을 전전하셨던 고인과, 아직 사회 초년생 및 학생으로서 자리를 잡지는 못한 고인의 자녀들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추모객들이 많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게다가 속 깊게 이야기할 수 없는 고인의 형제 관계에 있어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가 있었다. 그로 인해 부모님께서 이야기하는 걸 슬쩍 들으니, 누구는 아예 동생이 죽었는데 연락도 안되고, 누구는 벌써 장례식장에 와서 추모만 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두 분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라는 사람이 얼굴도 안 비치는 이 안타까운 상황, 하지만 필자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주 이해가 안 가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돌아가신 고인이 너무 안타까울 뿐.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장례식장에는 고인을 추모하러 온 사람들이 내 예상보다도 너무나 적었다.


"종성이 엄마, 장례 비용은 어떻게 할 거예요?"

"병원 비용은 어떻게든 납부를 했는데, 장례비용은 좀 막막하네요 형님..."

"음, 아무래도 마음 맞는 형제들끼리 나머지 장례비용을 분담해야 할 거 같네"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는 테이블에 앉아 심각하게 '장례 비용'관련 문제를 논의하시기 시작했다. 나도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조문객이 너무 적어 이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실지가 궁금하던 찰나였는데 이야기를 옆에서 그냥 듣다 보니 쉬이 해결될 문제는 아닌 걸로 생각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본인 포함 6형제들에게 고인의 장례비용을 분담할 것을 요구할 것이고, 그중에서 아예 의절 및 사이가 좋지 못했던 형제분들을 제외하고 결국 남은 사람들이 분담을 하게 될 거 같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다소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인은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계신데, 남은 사람들은 고인의 장례 치를 비용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말이다.


사실 필자도 2년 전 장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동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장례 비용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냥 별거 없어 보이던 장례식장 안의 '모든 것들' 즉, 작은 종이컵부터 하다못해 국자, 그리고 넥타이까지 모든 것이 다 돈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례식 도중 유가족들이 결정해야 하는 납골당의 위치와 심지어 납골함의 가격도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의 가격이었다. 필자의 장모님의 경우 그래도 추모객들이 많이 오셔서 도움을 주신 덕분에 큰돈을 지출하지는 않고 무사히 치를 수 있었지만 만약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른다고 하면 이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돈 때문에 이제는 쉽게 죽기도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었다.


장례비용은 게다가 인생의 빅 이벤트 중 하나인 결혼비용과는 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차이가 나게 된다. 전자인 경우 주변 사람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기 때문에, 비용을 쉽게 예단하여 모아둘 수가 없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죽음인 경우 유족들의 금전적 부담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작은 아버지의 경우처럼 주변에서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하더라도 남은 유족들의 금전상황이 녹록지 않다면 장례비용은 정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포털사이트 기사를 보면, '무연고 장례식'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그야말로 '무연고'인 것이다. 홀로 고독사를 하시고, 주변 인간관계까 모두 끊긴 고인의 경우가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무연고는 아니지만, 고인의 유족들이 금전적인 문제를 이유로 고인의 시신을 인수 거부하는 경우라고 한다.

사실 필자도 2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무연고 장례식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거 돈 얼마나 든다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동행하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주의 일원으로서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장례식장의 비용은 상상 그 이상의 비용이었다. 도의적으로는 유족들이 시신을 인수하여 장례식을 치러주고, 납골당에 봉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나 현실적으로는 남은 유족들도 정말 막막할 심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듣는 경험보다, 망인의 넋을 기리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질 것은 자명하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 중인 한국에서, 장례비용을 조금이나마 현실화하여 남은 유족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함께 필요할 시점이 이미 지나고 있는 거 같다. 장례식이 일상화되는 사회, 장례비용을 조금이라도 효율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곤 한다.

다음 생애엔 지금 보다 더 예쁜 삶을 살아가시길, 작은 아버지 편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