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벌써

by 빛담

첫째 딸이 며칠 전 팬티에 피가 나오는 거 같다며 어제 나를 찾았다. 남자인 나로선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경험을 해볼 수 없는 부분이라 어찌해야 하나 당황을 하고 있었는데, 첫째는 그냥 그러려니 화장실 선반을 열고 그 안에서 엄마의 생리대를 찾아 착용을 한 듯 보였다.


"괜찮아 서현아?"

"응, 어제도 이랬어서 미리 생각은 하고 있었어."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나름 준비했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는 첫째였다. 나에겐 그저 어릴 적 아빠등에서는 절대 잠들지 않고 울음을 빼액 빼액 질러대는 핏덩이로 밖에 안 보였었는데, 그저 그 시절보다 조금 자라 이제 어른 체격이 되어가는 어린이 정도로만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이의 몸에서 소중한 생명이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이제는 더욱 본인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람이 '벌써' 되었다는 것에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주 어릴 적, 또래보다 말하는 수준이 너무 낮고 반향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너무 많아 우리 부부가 찾았던 자녀 발달센터에서, 역시나 또래보다 많이 뒤 떨어지는 검사 결과를 받아 든 뒤 느꼈던 절망감도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짧지도 않은,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남들보다 '뒤쳐짐'이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에 대해 어떻게 사회가 차별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절망감이 들었던 것 같다.


'남들보다 공부를 못해서'

'남들보다 운동을 못해서'

'남들보다 눈치가 없어서'


앞서 이야기 한 '남들보다' 무엇 무엇하지 않다는 다수의 주관적 잣대로 인해 우리는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오고 있는가에 대해 항상 생각해 오던 나였다. 요새 입사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대기업에 합격을 하고도, 매번 동료들과의 상대평가,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정량평가에서도 우열을 가리며 조직 내에서도 우와 열을 가린다. 이유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함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평균값'을 맞추는 일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항상 정답을 알 수 없는 '평균값'을 맞추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나라에서, 남들보다 객관적 지표로 뒤떨어지는 아이가 바로 '우리 아이'라는 판정을 센터에서 들었을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는 다행스럽게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커주고 있다. 물론 또래아이들과 완전 차이가 없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또래들 대비 뒤쳐짐의 정도가 매우 심했던 사회성 부분도 많이 좋아져 다수의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소소한 몇 명과는 놀러도 가고 이야기도 하고 있다. 학업 성취도 부분에서도 어려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은 크게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나를 닮아 피는 못 속인다고 '버럭' 하는 버릇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모를 많이 생각해 주는 배려심 있는 아이로 성장을 해 주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듯, 첫째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자라주고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 첫째는 이성에 대해 점차 호기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되겠지.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시기 피부에 난 트러블들이 너무 싫어 거울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주눅 든 채 이성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여자들은 다 내 얼굴을 징그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이성친구는 꼭 한번 사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가졌었던 거 같다. 아마 첫째도 이제 슬슬 이성친구를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빠든 엄마든 동생이든 간에 자주 이야기 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딸 가진 부모로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딸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나에 대해 큰 걱정을 안 하셨었는데... 그것은 내가 '남자' 여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딸을 둔 집 부모는 아이가 커 갈수록 더욱 걱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 못했지만, 아이가 초경을 하게 됨으로 인해서 이를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흔들릴지언정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아이가 되어 주기를.'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어른스러운 여성이 되어 주기를.'

오늘도 딸을 가진 부모로서, 바라기 어려운 소원을 빌며 큰 아이의 초경을 축하하며 글을 줄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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