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 적용해 봐야겠지

by 빛담

20대 때, 회사에 들어와 가장 즐거웠던 날은 다름 아닌 '건강검진' 날이었다.


지금 회사에 다니기 전, 취업 준비를 하며 잠시 다녔던 회사의 건강검진 날은 휴일이 아니었다. 검진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라는 선배의 지시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비교적 규모가 커서인지 '공가'라는 개념이 있어 검진 후에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일까. 건강검진 날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여섯 시에 검진 병원을 방문하고, 아무리 늦어도 열 시 전에는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산책을 하거나, 여유가 있으면 친구들과 가볍게 술 한 잔을 즐기기도 했다.

검진 결과도 그리 신경 쓸 게 없었다. 군대 가기 전부터 높았던 혈압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상 범위였고, 의사도 "아직 젊으니 괜찮다"며 웃으며 상담을 마무리해주곤 했다.


하지만 서른을 넘기고, 운동 중 무릎 수술을 겪은 뒤로는 체감상 살이 훨씬 더 쉽게 찌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구나 겪는 변화일 수 있지만, 내게는 처음이라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그간 운동을 게을리한 업보였을 것이다. 그저 젊음을 믿고 방심했으니, 기초대사량이 줄어든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몸은 점점 마른비만으로 변해갔다. 팔 다리 근육은 빠지고, 복부는 도드라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예전보다 더 볼품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신체적인 퇴행뿐만은 아니었다.


서른다섯. 회사에서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승격된 이후부터 나는 정신적으로도 조금씩 무너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름의 '성공 방정식'이 있었다.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고, 팀을 리딩하며, 고객사의 신뢰를 쌓아 사내에서 인정을 받는 것. 나도 내 스스로 '괜찮은 인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고 나니, "쟤는 원래 저 정도는 해"라는 시선이 늘어났다. 특별함이 사라졌고, 기대치만 높아졌다.

물론, 남의 평가에 휘둘리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평가가 곧 연봉이 되고, 회사 내 입지가 되기에 마음처럼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 시선이 들려올 때마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그 때문이었을까. 정신적으로 점차 기복이 심해졌고,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검진 항목 중 '정신/스트레스' 부분에 예전에는 꽤 부정적인 응답을 적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냐고? 아니, 결국은 내 스스로 이겨내야만 했다.


2년 전 건강검진에서는 '요산'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다. 몸무게와 체지방률도 높았다. 그걸 계기로 나는 술을 끊었다. 사실 하루 355ml 맥주 한 캔 정도는 일상이었지만, 스스로 과음이라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요산 수치가 높아지면, 최근 즐기기 시작한 '달리기'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걸 깨달았고, 술과의 이별을 결심하게 됐다.

검진 이후 나는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원래 자전거를 더 좋아했다.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 걸 즐겼기에 유산소 운동과 취미가 결합된 자전거 타기가 좋았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내 자전거 보관시설이 없어 두 대를 폐차한 뒤로는 포기하게 됐다. 그 대신 선택한 것이 바로 달리기였다.

작년 7월과 8월, 나는 매일 5km씩 달렸다. 더운 여름날, 어차피 잠이 안 오는 밤이라면 달리고 와서 씻고 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Daily 5km 런닝, 그리고 집에서 푸시업 100개를 꾸준히 했다. 몸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2년 전보다 5kg 감량한 78kg, 체지방률은 20% 이하로 유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해내고 있다'는 감정이 나를 살아있게 해주었다. 살면서 그렇게 생생하게 나를 느낀 날이 또 있었던가.


하지만 1년 후, 오늘 받은 건강검진 결과는 2년 전과 동일했다. 체중, 체지방 모두 말이다. 여전히 술은 끊었고, 달리기는 월 최소 50km, 많게는 80km까지 뛰었는데도 말이다.

"빛담님, 술담배 안 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네요... 그런데 체중이 높아요. 체지방도요."

"네에..."

솔직히 답답했다. 내가 더 해볼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었다.

"운동 더 하시고, 유산소보다는 근력 위주로 하시는 게 좋겠어요."

"네에..."

가정의학과 아무개 의사의 상담내용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싶었다. 좀 더 구체적인 가이드는 없을까? 누구나 아는 조언 말고, 나에게 맞는 실질적인 조언 말이다.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와 먼지 쌓인 푸시업 바부터 꺼냈다. 그간 근력운동을 게을리한 탓에 방 구석 저멀리 감춰져 있었다. 나는 그 녀석을 물티슈로 잘 닦고,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만큼 푸시업을 했다. 40개가 한계였다. 아마 내일은 알이 배겨 더 못하겠지 싶으면서도.

달리기에도 변화를 주기로 했다. 예전엔 속도나 거리만 신경 썼지만, 이제는 'Zone 2' 심박수(135~145)를 유지하며 천천히 오래 달리려 한다. 실제로 오늘 그렇게 달려보니, 평소보다 1km당 50초 느린 7분 20초로 뛰었다. 그런데 훨씬 덜 힘들었다.

아직 이 방식이 진짜로 체지방과 체중 감량에 더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건강검진 결과 중 2년전과 동일한 체중/ 체지방을 판정 받게 되어 억울한 건 사실이었다. 이렇게까지 운동을 해왔는데, 몸은 변하지 않았다는 현실이 억울했고, 그렇다면 행동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이제는 운동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체중감량 목표는 그대로 두되,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여 이행해 본 뒤, 내년 건강검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다시 한번 확인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싶다.

그 생각 자체가 지금 내 삶에 의욕이 부족하다는 반증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와도 이와 관련된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의 한숨이 오갔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나와 대화하며 마음의 체력을 단련하는 것.

당장 변하지 않더라도, 천천히라도 움직이며 흘러가는 시간에 함께 따라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결국 이문제를 둘러싸고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줄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상, 나 스스로 단련하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 이외의 정답은 없다라는 생각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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