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안녕하세요! 혹시 실례지만 이번 주 일요일 11시, 채플엣논현 예식 서브 촬영 가능하신가요?”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하던 중, 어디서 본듯한 이름의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약 2년 전 마지막 촬영을 의뢰했던 이대표였다. 그는 다시, 웨딩스냅 촬영자를 찾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작년에 웨딩 촬영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었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더는 주말을 반납하고 싶지 않았고, 글에 집중하고 싶기도 했다. 웨딩스냅을 하며 인연을 맺어온 여러 대표님들과 함께한 추억이 많았었지만 나는 더이상 촬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그런 결정을 한 이후에도 카메라 장비를 정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미련때문 이었다. 여분의 카메라와 렌즈를 팔기 전, ‘혹시 다시 촬영하고 싶어지면 어쩌지?’ 하는 망설임이 가장 큰 요인 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생각한 시장 가치보다, 나에 대한 실제 수요는 훨씬 낮았다. 이 바닥은 잔인했다.
결국 풀프레임 장비와 단렌즈를 팔고, 대신 필름 감성의 레트로 카메라 한 대를 들였다. 온전히 내 개인취향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대표님, 죄송해요. 제가 그날 선약이 있어서요.”
“아 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업 촬영을 위해선 최소한의 장비 조건이 필요했으니까. 내가 현재 보유한 카메라 장비들로는 그 기준에 미치치 못했기에, 나는 거절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후, 또다시 연락이 왔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토요일 라마다 호텔 14시 10분 예식인데, 촬영 가능하신가요?”
두 번째 제안이었다. 이번엔 망설임이 컸다. 그가 왜 굳이 나에게 다시 연락을 했을까? 그동안 나와 촬영했던 건 세 번 남짓. 예전에 스냅 구인란에서 내가 그의 구인글을 본 뒤 지원했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촬영 의뢰를 잘 주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 그의 촬영 제안은 낯설고 궁금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장비 상황과 함께 내 솔직한 마음을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카메라는 한 대뿐이고, 추가 카메라가 한대 있지만 상업용이 아닌 감성 취향의 장비라는 점. 그럼에도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약 한 시간 뒤, 답장이 왔다.
“그래도 작가님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긍정의 메시지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한창 상업 촬영을 많이 하던 예전엔 토·일 양일에 4건을 촬영하기도 했다.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회사 밖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뿌듯했었다. 하지만 이젠 감도 떨어졌고, 예전 같지 않을 거라는 불안도 컸다. 그렇게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며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결혼식 현장. 다행히, 내 손과 눈은 여전히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어떻게 찍어야 가장 예쁠지. 나는 그날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촬영이 끝난 후, 대표님과 짧게 대화를 나눴다.
“작가님,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저야말로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라 긴장했었어요.”
“제가 더 감사하죠. 서브 촬영자가 급히 필요했는데, 예전에 작가님이 찍어주신 결과물과 작가님이 뛰어 다니시던 열정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그 순간, 나는 부끄러워졌다. 예전 그와의 촬영 당시, 사실 나는 좀 거만해져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스케쥴이 많던 시절이라 나도 모르게 겉멋만 들어 아주 열정적으로 촬영을 하지는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때의 나를 긍정적으로 기억해주고 있었다.
웨딩스냅 시장은 냉혹하다. 단가를 깎고, 자신을 갈아넣어야만 일 하나를 따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나를 기억해주고 다시 기회를 준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결과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비록 장비는 부족했지만, 감성과 애정을 담은 사진들이 나왔다. 아울러 필름 카메라 특유의 색감은 어떠한 다른 카메라들도 따라올 수 없었다. 대표님도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며칠 후, 또 한 번의 촬영 제의를 주셨다.
이번엔 야외 하우스 웨딩. 사실 나는 이런 촬영을 선호하지 않는다. 소규모 하우스 웨딩 촬영간에는 변수도 많고, 무엇보다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릴 처지’가 아니다. 예전 같으면 사진촬영을 해달라는 하객의 부탁에도 조용히 선을 그었겠지만, 지금은 그 요청들마저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렇게 촬영에 임하고 있는 순간이, 나에게는 무척 간절했던 모양 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있는 힘껏 셔터를 눌러댔다.
"고객은 말없이 떠난다"
웹서핑 중 보게 된 문장 하나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고객은 말없이 떠난다.’ 지금의 내 상황과 꼭 맞는 말 같았다. 아무리 오늘 누군가 “수고하셨다”고 말해줘도, 그가 결과물을 보고 만족하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 다시 연락이 오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자주 가던 식당의 맛이 조금만 달라져도 예전만큼 가지 않게 된다. 예전에는 동료들에게 애정을 담아 피드백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말없이 떠나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일도, 다시 마주하게 된 웨딩 촬영도 나에게 의뢰가 더이상 안들어 오게 될 지도 모른다. 고객은 언제든 말없이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다짐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주어진 기회에는 늘 진심을 다하겠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일을 의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