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으로 지은 집

이별과 시작 사이의 집

by 빛담

"여보, 언제까지 주식창만 바라보고 있을 거야!"

올해 초, 나는 평소 즐겨하던 미국 주식의 매매법을 좀 더 공격적으로 세팅했다.

바로 새벽 자동 매수였다. 내가 정해둔 가격에 도달하면, 종목당 조금씩 마이너스 통장으로 매수되도록 걸어두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꽤 유효했다. 중국이 AI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이른바 ‘딥시크’ 사건 때 이 방법으로 쏠쏠히 이익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투자에서 ‘되네?’라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바로 팔아야 할 시점이라는 걸, 그때 또 뼈저리게 깨달았다.

투자 경험이 3년 남짓했던 나는, 종목당 신고가 대비 -20% 정도를 하한가로 정해 두고 내려가면 분할 매집을 이어갔지만, 올해 미국의 관세 이슈로 인해 그 하한가는 ‘무릎’이 아니라 ‘가슴’쯤 되는 높이에서 잡혀 버렸다. 그것도 레버리지를 끌어 쓴 상태였다.

사실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당시 내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 대출을 갚은 뒤 3년 여가 지난 현시점, 그간 모아 온 투자 금액은, 심심풀이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였다. 그 금액을 가지고 투자를 있어가는 나는 손실이 커질까 두려워 밤마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동 매수로 인해 발생한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도 은근히 거슬렸다.

결국 와이프에게 레버리지를 썼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얼굴이 굳었지만, 본인이 모아둔 돈을 내어 빚을 갚게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손실 회복을 기다릴 수 있었다. 다행히 미국의 관세 이슈가 일단락된 후 손실은 양전으로 돌아섰고, 와이프는 빌려준 원금을 빠짐없이 회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만류하며 경험상 지금이 상승장이라고 기다려야 할 때라며 그녀를 여러 번 설득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그리고 돈을 다 갚은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여보, 여유 자금이 조금 남으면 주식 말고 우리 집 이사하자. 그게 낫지 않아?"

마침 큰애는 내년에 중학생이 된다. 현재 집은 복도식 59㎡, 화장실도 하나뿐이었다. 곧 사춘기에 들어설 아이들과 함께 쓰는 화장실이 마음에 걸렸다. 나 또한 주식을 시작한 이유가 화폐가치 하락을 막고 자산을 지키려는 목적이 컸기에, 더 넓은 집이 가족 모두에게 투자이자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결심 후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동산에 집을 내놓는 일이었다.

네이버 호가를 참고해 가격을 산정했는데, 중개사는 예상보다 3천만 원은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비싼 가격에 팔려야 새 집과의 갭을 메울 수 있었기에 반가웠다.

등록 하루 만에 집을 보러 손님이 다녀갔다. 치울 틈도 없었는데, 부동산 사장님이 곧바로 가계약금을 입금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평소 자주 하던 카메라 거래도 하루 만에 팔리는 경우가 드문데, 집이 이렇게 빨리 팔린다는 게 놀라웠다.

와이프와 상의 끝에 첫 손님에게 집을 내주기로 했고, 가계약금을 받았다. 하지만 나중엔 “조금 더 기다릴 걸” 하는 후회가 남았다. 상승장에선 시간이 곧 돈이니까. 결과론이지만 사실 조금만 더 기다렸어도 될 뻔했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이미 근처에 40평대 아파트를 봐둔 상태였고, 우리는 곧바로 매수할 집을 보러 갔다. 33평 두 곳, 40평대 두 곳, 총 네 곳을 둘러본 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인테리어와 집 상태가 좋은 33평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곳은 방이 부족했다.

나와 와이프 모두 둘째로 태어나 늘 자기 방 없이 살아왔던 터라, 고민 끝에 이번만큼은 '공간'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인테리어 상태는 다소 아쉬웠었지만, 그래도 무난한 40평대를 선택했고, 매도와 매수 계약을 모두 체결했다.


집 계약을 마치고 나니 인테리어, 가전, 가구가 고민이었다. 취득세와 중개비만 해도 큰돈이었고, 큰애의 교정비까지 겹쳤다. 결국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도배조차 미루고, 꼭 필요한 가구와 가전만 들이기로 했다.

그즈음 ‘내가 판 가격이 너무 낮았나?’ 하는 후회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주식이든 집이든 매도한 뒤에는 쳐다보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판 집의 실거래가가 매도가보다 오른 걸 보고 탄식이 나왔다. 조금만 늦췄다면 2~3천만 원은 더 받을 수 있었을 테고, 그 돈으로 취득세라도 충당했을 텐데.

그러나 6·2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며 마음을 달랬다. 그 이전에 매도·매수를 모두 마친 덕분에 큰 변수 없이 넘어올 수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내가 산 집이 더 높은 가격에 다시 거래된 걸 보며 ‘그래도 너무 저점에 팔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아이들은 사실 이번 이사에 대해 크게 감흥은 없었다. 다만 좁은 방에서 서로 부딪히며 살던 일상이 이제는 끝나고, 각자 자기 방이 생긴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

그와 반면 와이프는 훨씬 기대가 크다. 그녀는 집 안 곳곳에 흩어져 있던 화장품과 옷을 정리하며, 드디어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날을 손꼽았다. 오랫동안 꿈꿔온 작업방을 꾸리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나는 큰 감흥은 없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복도식 아파트가 싫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우리 집으로 향하던 중 중간에 이웃 현관문이 열려 있으면 나 또한 열린 문과 난간 사이를 비집고 통과해야만 했던 답답함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계단식 아파트는 여유로워 보였다. 한 층에 두 집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품격이 달라지는 듯했다. 비록 구축의 아파트지만, 이번 이사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이삿날이 점점 다가온다. 지금 집은 9년 전, ‘평생 살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왔었다.

성남의 허름한 주택, 장모님과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독립을 선언한 공간이었다.

비록 낡고 좁은 복도식 아파트였지만, 이웃과의 관계도 좋았고, 집 자체도 큰 하자는 없었다. 여름엔 에어컨을 자주 틀지 않아도 시원했고, 겨울엔 난방을 많이 하지 않아도 따뜻했다. 무엇보다 문 앞에서 보이는 한강뷰가 내게는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이들이 자라 사춘기를 앞둔 지금까지, 우리는 이 집에서 복작복작 즐겁게 살아왔다. 곧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지만, 큰애가 “각자 방에만 있으면 서로 생사 확인도 못 하는 거 아냐?”라며 던진 농담이 괜히 마음에 남는다. 공간은 넓어지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아져야 하겠지. 하며 큰애의 농담을 꼭 농담으로만 이해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결국 9년 전 '평생 살겠다'는 마음은, 이제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여보, 우리가 모아서 넓은 집으로 가게 된 거야."

"그래, 우리가 해낸 거 맞네."

나는 평소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너’ 아니면 ‘나’라고 분리해서 말하는 편이다. 그런데 와이프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금전적으로만 보면 내가 더 많은 지분을 부담했을지 몰라도, 집을 지켜온 건 그녀였다. 내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준 것도 결국 그녀였으니까.

그래, 우리가 모아서, 우리가 해낸 거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의 마지막 화요일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곧 수요일, 목요일, 일요일…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이 집에 다시 들어올 수 없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예정된 미래가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집에서 또다시 시작해 나갈 것이다.


"집은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 작자미상
PJH00025.jpg 집 문을 열면 펼쳐지던 이 풍경을, 이제는 보기 어려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