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한 곳과 마을의 골목, 세 시간 반의 힐링
사실 여태껏 홀로 여행을 하면서, 욕실과 화장실이 숙소 밖에 있는 곳에서 지낸 적은 없었다.
대학생 때도 다른 친구들이 흔히 묵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은 피했다.
이번 여행도 원래는 평소처럼, 숙소 안에 욕실이 딸린 방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이번만큼은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
그래서 숙소는 혼자 쓰되, 욕실과 화장실은 공용인 곳들로 10박을 모두 예약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달랐다. 오늘은 교토역에서 아침 8시 38분 출발 아마노하시다테 행 열차를 타야 했다. 숙소에서 역까지는 도보 15분.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층에 있는 네 개의 방이 모두 공용 욕실 하나를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7시부터 욕실을 점령했고, 그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문밖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방 안에서 조용히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 ‘찰나의 타이밍’을 놓쳐,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다른 투숙객이 욕실을 차지했다.그 짧은 순간에 밀려온 허탈감이 꽤 컸다. 마치 아침부터 회사에서 회의실 잡기 경쟁에 밀린 듯한 기분이랄까? 결국 40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서성이다가, 7시 40분이 돼서야 겨우 10분 만에 씻고 나올 수 있었다. 숙소를 나설 땐, 이미 땀이 맺혀 있었다. 급히 챙긴 건 카메라, JR 패스, 그리고 모자 하나. 면도는 했지만 머리는 다 말리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며 ‘이래서 여행이 삶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만큼 삶도 여행도, 준비가 아무리 완벽해도, 뜻대로 되는 날은 드물때가 많다.
교토역에 도착해 31번 플랫폼으로 향했다. 평소 신쾌속이나 나라선 탈 때와 달리 처음 가보는 승강장이었다.
살짝 긴장했지만, 전광판에 “아마노하시다테행 8:38” 문구가 뜨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좌석에 앉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긴장감이 풀리며 이내 졸음이 밀려왔다.
약 한 시간을 정도 눈을 붙였을까?, 눈을 뜨니 차창 밖으로는 산과 들이 번갈아 스쳐갔다. 그 순간 문득, 올해 12월 일본어 능력시험 원서를 접수했던 일이 떠올라, 불안한 마음에 서울에서 가져온 일본어 단어장을 펼쳐 조용히 외우기 시작했다.
‘왜 나는 아직도 이런 걸 하고 있을까?’
사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 드라마틱하게 바뀔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계속한다. 아마도 그건 ‘결과’보다는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 합격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시간을 의미 있는 무언가에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삶을 좀더 밀도있는 시간으로 채워나갈수 있다는 점이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을것을 알면서도 일본어 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마노하시다테 역에 도착하자, 다시 나의 분주함이 시작됐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꼴. 앉아서 가고 싶다면 줄을 잘 서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우르르 탑승하는 직행버스를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요금이 두 배인 걸 알고는 뒤로 물러났다.
조금 기다리면, 내가 타야 할 400엔짜리 버스가 올 것이다. 그 기다림이 오히려 좋았다.
버스 시간 예정표 대로 약 10분 후, 내가 타고 가야할 이네행 버스가 도착했다. 창밖 오른편으로 바다가 펼쳐졌다. 초가을의 교토 바다는 조용했고, 바람은 버스안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찰랑한 질감이 느껴졌다. 그 풍경에 젖은 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이렇게 교토에서 세 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 이네마을. 비는 오늘도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거세고 세찬 비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해안가에 바짝 붙은 집들은 마치 수상가옥 같았다. 나란히, 반듯하게, 묘하게 정돈된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그래서일까, 나와 함께 내린 여행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풍경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이네마을에서 사실상 단 하나뿐인 카페명소, 이네카페를 찾아갔지만, 웨이팅이 길었다.
‘이 정도 마을이면 다른 카페도 있겠지’ 하고 이네 마을의 북쪽으로 발걸음을 향해 보았지만, 결국 다른 곳은 문을 닫고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왕 이렇게 된거 그냥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한 손엔 우산, 다른 손엔 카메라.
바다와 맞닿은 집들을 찍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파도가 높을 때 어떻게 할까?’ 하지만 곧 스스로 답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것뿐이지.”
그때 길가에 호빵맨 인형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이었다.어릴 적 즐겨보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그 시절, 선생님은 “우리가 자라서 일본을 뛰어넘는 문화를 만들자”고 하셨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사실 내가 개입하여 직접 만든 건 없지만, 그 시대를 산 사람,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괜스레 뿌듯했다.
계속해서 이네마을을 걸었다. 비록 발은 다소 열감이 날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네마을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힐링이었다. 마을을 걷다 보니 주민 몇이 집 앞을 쓸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그것이 진짜 '헤리티지' 라고 생각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켜내는 삶. 그 안에는 자부심이 있고, 여유가 있다. 이네마을의 사람들은, 내가 보기엔 그걸 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한편, 이네 마을을 걷던 중, 집 벽에 붙은 흥미로운 표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코도모 110(こども110)”이라고 쓰여 있었다.
‘코도모? 어린이란 뜻이잖아. 110은 일본의 경찰 신고번호 아닌가?’
대충 짐작하건대, 아이들을 보호하는 집을 뜻하는 표시 같았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이 표식이 붙은 집은 어린아이가 위험을 느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에서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고, 경찰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지역까지 안전망을 넓히기 위해 ‘코도모 110’이라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이 제도에 참여한 가정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대신 신고하거나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경찰과 학교, 그리고 가정을 잇는 ‘마을의 작은 파수꾼’인 셈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코도모 110’ 표시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여행 초반에는 무심히 셔터만 누르던 거리였지만, 여유 있게 머무는 이번 여행에서는 그런 표식을 꽤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주택가를 중심으로 약 300미터마다 하나씩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아이들이 조금 더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그런 ‘안심’이 있었다.
90년대 초등학생 시절, 유튜브도 스마트폰도 없던 때. 집 앞 놀이터로 나가면 그 아파트에 살지 않던 아이들과도 금세 친구가 됐다. 하루밖에 함께 놀지 않았어도,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부모님이 간식을 내오고,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어울렸다.
현재 일본의 코도모 110 제도 처럼 체계적이진 않았지만, 분명 ‘마을 공동체’라는 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어렸을 적 그당시의 나보다도 더 커버린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
놀이터에가서 몸으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늘 푸념한다.
“아빠, 놀이터에 친구들이 아무도 안 와. 놀 사람이 없어.”
이제는 놀이터조차 위험한 공간이 된 걸까.
아니면, 끝없는 경쟁 속에서 학원으로 향한 아이들 때문에 텅 비어버린 걸까. 아마 둘 다겠지.
언젠가 우리 한국사회에서 당연시 했던 ‘함께 아이를 지킨다’는 공동체의 감각은,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코도모 110’이라는 표식을 마주할 때마다 반가움과 함께, 어쩐지 가슴 한켠이 씁쓸해졌다.
그곳엔 내가 잃어버린 시절과, 지금의 현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세 시간쯤 그렇게 마을을 걸었다. 파도 소리가 마음속의 먼지를 쓸어갔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네카페로 들렀다. 이번엔 줄이 짧았다. 나는 짧아진 줄 만큼이나 한번 쯤 들어가서 이네마을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보고 싶어졌다.
창가 자리에 앉아 레모네이드 한 잔과 케이크를 주문했다. 시원한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키니, 비 냄새와 바다 냄새가 섞여 코끝에 스며들었다. 케이크를 다 먹고, 창밖을 바라봤다.
비 내리는 이네마을은 여전히 고요했다. 그렇게 이네마을에서의 짧은 세시간 반여의 여정을 마치고, 나는 또다시 먼 교토의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아까 탑승했던 400엔짜리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400엔짜리 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아마노하시다테역으로 돌아왔다.
교토역행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두었는데, 출발 시간이 애매했다. 약 1시간 반 정도를 더 머물러야 했다. 날씨는 흐리고 비도 내려서, 전망대로 오르기엔 적당치 않았다. 나는 결국 역무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가능한 가장 빠른 기차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비록 문법도 어눌하고 목소리도 작았지만, 내 말을 이해한 역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바로 표를 교환해주었다.
표를 교환 한 뒤, 잠시 시간이 남아 나는 역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5분쯤 걷자 ‘치온지(智恩寺)’라는 절이 나타났다. 규모가 제법 컸다. 교토 여행 초반이라 그런지, 절이나 신사를 볼 때마다 셔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한국에도 청평사나 낙산사처럼 아름다운 절이 많지만, 일본의 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접근성’이 아닐까
.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우리나라 절들이 대부분 산속에 자리 잡은 반면, 일본의 절은 도심 가까이에 있다. 사람들의 일상 속에 녹아든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절과 신사 주변에는 늘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다. 기도하러 온 현지인, 사진 찍는 관광객, 산책하는 노인들까지.
그런 모습이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치온지 내부는 평범했지만, 역 가까이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여행의 남은 시간을 조용히 채워주는 존재랄까.
그렇게 역무원이 바꿔준 조금 더 이른 열차에 올라, 교토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이네후네야와 아마노하시다테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빛이 잦아드는 저녁, 기차는 천천히 교토로 향했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잔잔히 저물어갔다.
子どもを守るのは、大人だけでなく、まちそのものだ。"아이를 지키는 건 어른뿐만 아니라, 마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