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과 한 서점, 그리고 조금 일찍 찾아온 이별

by 빛담

교보문고 POD로 찍어낸 책 한 권이 집에 도착했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표지 책날개 쪽 사진이 조금 찝혀 있었고, 몇 군데 오탈자도 눈에 띄었다. 아쉬웠지만 수정이 가능한 문제였다. 표지와 내지를 다시 손보고 업로드까지 마쳤을 때,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짜 한 권이 완성됐구나.’

그 순간,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예전 책 〈일상의 빛과 그림자〉를 가장 많이 홍보해주고, 가장 많이 팔아주었던 독립서점 사장님이다. 올해 여름, 그 서점을 찾았을 때 사장님은 타로 카드를 펼쳐 놓고 내가 겪고 있던 일과 고민을 꽤 오랜 시간 들어주셨다. 그날 나는 생각보다 큰 위안을 받았고, 그 이후로도 사장님은 내 글과 사진을 꾸준히 지켜봐 주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번 책이 나오면 가장 먼저 떠올린 곳도 그 서점이었다.


나는 사장님께 정중하게 인스타그램 DM을 보냈다.

“곧 책이 나올 것 같은데, 오프라인으로 입고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답장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서점은 내년 3월까지만 영업을 하고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고는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여 주셨다. 나는 우선 세 권이라도 입고를 하겠다고 답했고, 사장님도 괜찮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당황스러웠고, 솔직히 허탈했다.


사실 사장님과는 이전 책 〈일상의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사진 에세이라는 장르로 북토크를 해보자는 제안도 받았고,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굳이 이제는 더 출판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상의 빛과 그림자〉를 자비로 열몇 권 더 출판해 두기도 했다. 북토크에 책 없이 갈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3월까지만 영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장면들이 한꺼번에 흐트러졌다. 〈일상의 빛과 그림자〉로 하기로 했던 북토크, 그리고 사장님과의 사업 연장선에 있던 〈잠시만, 교토〉의 입고까지. 두 책을 잇는 하나의 흐름으로 생각했던 계획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결정을 하나 내렸다.

이번에 나온 〈잠시만, 교토〉는 가급적 오프라인 입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독립서점의 수익 구조를 떠올려보면 이 판단은 더 분명해졌다. 요즘 대부분의 독립서점은 책 판매만으로는 운영이 쉽지 않아 북토크나 강연, 그에 따른 참가비로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만큼 한 번의 행사, 한 번의 입고는 서점 입장에서도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사실 그동안 독립서점에 입고했던 책들을 돌아보면 정산을 제대로 받은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보통 네 권을 입고하면 한 권은 샘플용, 세 권만 실제 판매용이 된다. 독립 서점에 잠시 들어와 사진만 찍고 나가는 손님들이 늘어나 실제 책 판매는 여의치 않고, 가판은 판매량과 사장님의 판단에 따라 빠르게 바뀐다. 거기에, 나처럼 무명 작가의 책이 오래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즉, 내 책이 독립서점을 통해 독자에게 팔리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이야기 이다.


비록 세네 권이라 하더라도 받아주는 서점 쪽에서는 분명 리스크다. 이미 영업 종료를 앞둔 서점에 그 부담을 얹고 싶지 않았다. 팔리지 않은 책이 어딘가로 떠돌거나, 결국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작품인〈잠시만, 교토〉는 오프라인 판매 대신, 교보문고 POD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한 권을 찍어도 같은 인세, 같은 품질로 제작되고 더군다나 내가 책을 사입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재고라는 이름의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었다. 책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는 이 선택이 가장 솔직하고 어쩌면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독립서점을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책 한 권은 사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강요로 느끼는 독자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그 한 권이 절실한 사장님의 사정도 이해가 된다.

나는 지금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래서 허탈했고, 그래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결국 서점에는 책을 들고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만간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인사와 함께, 사장님이 가장 잘 보시는 타로점 하나를 보러 겸사겸사 찾아뵐 생각이다.

비록 내가 그려두었던 사진 에세이 북토크는 이루지 못했지만, 나를 가장 먼저 믿어주었던 사장님과의 인연이 이대로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인연이 잠시 쉬어갈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아쉬울 뿐.언젠가 다시, 조금 더 나은 조건과 조금 더 여유 있는 상황에서 사장님과 또 다른 방식의 비즈니스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