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안고 돌아오다

들어도 달라지지 않는 감정의 무게

by 빛담

어제의 감정을 글로 옮긴 뒤, 머지않아 와이프에게서 카톡이 왔다.

본인이 화를 내서 이렇게 된 것 같다는,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사건 하나로 촉발된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정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결국 내가 어디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감각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오전에 회사에 와서는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어제의 일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지만, 일은 내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과 다시 마주해야 했다. 메신저로 주고받는 텍스트 사이에서, 그 역시 어제의 일을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보다 훨씬 상세한 설명을 나와 우리 팀에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 나름의 ‘미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존중해 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대화는 어색했고, 우리 둘 사이의 메신저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만의 해석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 오후가 되었다. 평소 같으면 대충 밥을 먹었을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입맛이 없었다. 어제 저녁도 먹지 않았고, 오늘 점심까지 거를 것 같아 느즈막히 혼자 회사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한 끼를 겨우 떼우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묘한 열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엊그제의 일과 어제의 일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내 안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그 열감이 심해지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은 감각이었다. 이게 공황장애의 전조라면 이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나는 사내 상담사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고, 가능한 한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았다.


몇 년전 도움을 여러번 받았던 상담사님의 이름을 몰라, 오늘 처음 뵙게된 상담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가족 안에 있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 감정, 아이의 훈육을 둘러싼 갈등, 회사 생활 속에서 몇 년 전 겪었던 관계의 상처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나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까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여러 관계들 속에서도 나는 늘 기능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 있는 감각이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말 같았다.


상담사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뒤 몇 가지 질문을 건넸지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내가 여겼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상담사께서 내게 “이렇게 이야기해보니 어떠세요?”라는 질문을 하였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후련하지 않다고 느꼈다. 결국 상담실을 나서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AI와의 대화를 통해 감정에 어느 정도 이름을 붙여둔 상태였던 탓인지, 더 이상 쏟아낼 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상담사는 다음 상담을 제안했지만, 잠시 고민 끝에 나는 잡지 않기로 했다. 그 선택은 상담사가 부족해서도, 제도가 의미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허탈함이 밀려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이 무거운 현실이 단번에 달라질 리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담실을 나서는 순간, 나는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었고, 감정은 정리되기보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만 분명한 건, 허탈함이 하루의 끝까지 따라왔다는 것, 그리고 그 무게를 안은 채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