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딸이 내 불안을 졸업시켰다.

아빠, 나 이제 교회 안 가도 돼요.

by 빛담

우리집 큰애는 다음 주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시간이 정말 그렇게 흘렀나 싶다.

달력의 날짜보다 더 빠르게 자란 건 아이의 표정과 말투였다. 어릴 적 발달이 더뎠던 아이였기에, 지금처럼 부모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꿈결 같다.

그런데도 부모 마음이라는 건 참 간사해서, 감사함과 동시에 늘 불안 하나를 손에 쥐고 산다. 내 불안은 공부가 아니었다. ‘사회성’이었다.

큰애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미묘한 밀고 당김, 눈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유독 어려워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성인도 그 부분은 어렵다. 그럼에도 아이가 어릴 때 발달이 더뎠던 이유 중 유력한 후보가 ‘사회성’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마음 어딘가에서 계속 경계선을 긋게 된다. 그게 부모의 본능인지, 아니면 아니는 별 생각이 없는데 내가 쓸데없이 먼저 겁을 먹는 건지, 가끔은 나도 모르겠다.

큰애는 4학년 때부터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녔다. 솔직히 나는 교회에 호감이 없었다.

십일조도 그렇고, 전도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도록 교육받는 분위기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정말 원한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긴 어렵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가거나, 혼자라도 갈 수 있으면 가라. 당시 대중교통을 혼자 이용하지 못하던 아이였기에, 나는

‘그 말이면 알아서 포기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사실은 교회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조심스럽게 그 말 속에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는 몇 번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교회까지 가는 연습을 하더니, 곧잘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이쯤되니 막을 명분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아이의 지도에는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전보다 조금은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게 크게 다가온 건, 종교를 떠나 교회라는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종교는 비호감인데, 교회라는 사회는 부모 입장에서 소속되면 참 좋겠다는 이중적인 마음. 나는 그 모순을 안고 아이를 응원했다.

그렇게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큰애는 매주 일요일이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나갈 만큼 교회를 즐겼다. 아이 인생에 ‘종교’라는 사회적·심리적 안전망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2주 전부터 아이가 교회에 가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주말에도 회사에 특근을 나가는 날이 많다. 주중에 밀린 일을 주말에 홀로 처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일요일이면 자연스레 집에 둘째만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주부터인가 첫째도 함께 남았다. 이유를 묻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교회에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갑자기 나오지 않아 걱정된다며 설득을 해달라는 연락이었다.

그 순간, 나는 종교를 걱정한 게 아니라 ‘사회 내 관계 안전망이 끊기는 것’을 걱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뜩이나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닌데 교회마저 안 가면, 아이 인생에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더 황량해질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지켜보다가 토요일 밤, 아이 방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큰딸, 요새 무슨 고민 있어? 그렇게 좋아하던 교회도 안 가고.”

아이는 담담한 얼굴로,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말했다. 친구를 만나는 건 좋지만, 나이가 들수록 교회가 점점 ‘신자를 늘리기 위한 활동’에만 열을 올리는 게 싫어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유일신을 위해 그 이외의 존재를, 본인까지 포함해 낮춰 말하는 분위기가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사회성이 부족해서 못 가는 게 아니라, 생각이 분명해서 안 가겠다는 아이 앞에서, 내가 붙잡고 있던 불안은 이유를 잃었다. 나는 아이를 설득하려고 문을 두드렸는데, 문을 열고 나온 건 ‘불안한 아이’가 아니라 ‘자기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안도감만큼, 낯섦이 크게 올라왔다. 아이가 자랐다는 건 기쁜 일인데, 그 자람은 종종 부모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온다.


다음 날, 일요일이자 주일인 오늘. 오랜만에 집에서 늦잠을 잤다.

큰애와 둘째와 내가 주말 오전에 함께 있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문득 ‘큰애와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둘째에게는 인스턴트 짜장면을 끓여주고, 큰애와 나는 순대국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예전에 우연히 먹어보고 맛있었다며 종종 이야기하던 음식이었다.

우리는 ‘어른의 소울푸드’ 같은 순대국 두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았다. 나는 들깨가루와 다대기를 잘 넣어야 맛있다고 알려줬고, 아이는 그 말을 받아들여 나와 비슷한 양을 넣고 밥을 말아 먹었다.

“마늘쫑도 쌈장에 찍어 먹으면 맛나.” 내가 권하자 그것도 잘 먹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어느새 아이가 이렇게 자라, ‘어른의 방식’을 배우고 따라 하는구나.


13년 전, 누워서 엄마만 찾으며 울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아이가 잘 먹기만 해도 감사했고, 잠만 잘 자도 안도했다. 지금의 나는 아이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만들어준 안전망이 아니라, 스스로 골라낸 기준으로 세상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릇을 싹싹 비우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너무 많이 먹었다. 큰애는 식사 사줘서 고맙다며 노란색 저가커피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했고, 나는 사양하지 않고 커피를 들고 집 앞을 걸었다.


우리는 같이 걸으며 우리는 어제 다 못 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종교활동에 대한 생각, 그리고 부모로서의 걱정, 앞으로의 삶의 방향. 나는 말했다.

“현실적인 건 좋은데, 그것만으로는 인생이 너무 팍팍하거든.”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상냥하면, 안 오던 기회도 저절로 찾아오게 되어 있어.”

그때 흐렸던 해가 고개를 비집고 나와 길가의 카페를 예쁘게 비췄다. 그 장면이 참 좋았다. 나는 괜히 한껏 뽐내듯 말했다.

“저런 빛을 보고 기뻐하는 거. 사소한 거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아이는 배부르게 맛난 걸 먹어서 그런지, “그러게. 꽤 행복하네. 이런 거구나.” 하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아이가 걱정하는 ‘인생’에 대해, 길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갈래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문득 생각했다. 나는 교회를 ‘사회성의 안전망’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안전망을 스스로 내려놓고도, 오늘 내 옆에서 순대국을 먹고 웃었다. 아이가 잃은 건 소속이 아니라, 본인이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가 얻은 건, 어쩌면 더 단단한 기준이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아이에게 사람을 강제로 붙여주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순간을 자주 만들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밥 한 끼, 커피 한 잔, 빛이 예쁘다는 말 하나. 그 사소한 장면들이 아이에게는 관계의 연습이 되고, 내게는 불안을 내려놓는 연습이 된다.


교회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 자리를 대체할 무언가가 분명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딸을 믿기로 했다. 내 딸은 이제, 많이 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