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아이언 돔

완벽을 지키려다, 나를 먼저 소모하고 있었다

by 빛담

오늘은 휴일근로를 하러 나왔다.

아주 가끔은 일이 크게 없음에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회사로 향하곤 한다. 가족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선택이라 미안한 마음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생활비가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그걸로 미안함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종종 그런 계산을 하며 마음의 균형을 맞춘다.


출근해서 내가 속한 파티션을 지나칠 때, 어느 자리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광경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기분은 늘 묘하다. 이 넓은 사무실의 공간과 공기를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혼자 차지하는 느낌. 동시에 오늘만큼은 내 자리에서 조용히 JPOP을 틀어놓고 일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스며든다.

사람의 소리 대신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음악이 흐르는 사무실은, 일터라기보다 잠시 빌린 나만의 ‘워케이션’ 장소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살짝 들뜬 마음으로 내 자리에 앉아 업무 PC를 켠다.

그러고는 한편으로 마음을 애써 다잡는다. 그래도 우리는 일을 하러 나온 것이다. 계약대로, 나는 일로서 회사에 보답해야 한다. 주중에는 ‘우리 팀’ 일을 살피느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업무들, 남아 있는 작업들을 식별하고, 그것들을 어떻게 팀원들에게 이해시키면 좋을지 정리해 글로 남긴다.

이건 내가 휴일에 조용히 홀로 나와 몰래 하고 가는 일들 중,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누군가 “주중에 하면 되잖아, 박프로”라고 말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주중에 해도 된다. 하지만 주중의 나는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우리 팀을 컨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게이트웨이 역할을 해내야 하는 내가 있다. 고민 끝에 일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한 조치중의 일환이었던, 업무 메신저 알람은 꺼둔 채로도, 결국은 실시간으로 앱을 확인하게 된다. 어떻게든 고객과 동료에게 내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메일과 메신저로 컨텍스트가 치열하게 오가고,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일’이 아닌 ‘내 일’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너무 힘들 땐 휴일에 잠시 나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코드 부채나 놓치고 있던 업무들, 업무에 대한 고민들을 메모장에 길게 적어둔다.

그리고 그 메모의 끝에는 늘 같은 질문이 붙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나는 이 질문을 미리, 앞서 떠올려보는 편이다. 어쩌면 나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끝을 상상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왜 이렇게 ‘앞서나가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며 자책할 때가 많다. 미리 ‘최악’을 고민해 두고, 정말 그 최악이 왔을 때에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음을 깨달은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예습’으로 바꿔버렸다. 아직 오지도 않은 시험지를 펼쳐놓고, 답안을 먼저 써두는 사람처럼.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이 앞선 고민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짱구를 굴려 아무리 ‘최악’을 상정해 둬도 그 최악을 넘어서는 지하실을 만나게 되는 사태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불안에 휩싸인다는 점이다.

개발자로서 늘 과할 정도로 예외처리를 해두던 습관이 남아서 그런가. 마치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처럼, 누군가, 특히 고객이 무엇을 물어볼 때마다 나는 완벽하게 막아낼 답을 준비하려 한다. 완벽하게 받아내고, 완벽하게 돌려주고, 완벽하게 끝내고 싶다.

그런데 천하의 아이언 돔도 모든 미사일을 막아내는 건 아니다. 일부는 놓친다. 그리고 그 ‘놓친’ 한 발이 내 영역 안에서 터질 때, 그 폭발은 꽤 아프다. 심각하게 아프다고 느낄 때도 많다.

결국 그런 순간이 오면 내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최악을 상정했냐.”


두 번째는, 생각보다 그 ‘최악’이라는 시나리오가 잘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오더라도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냥 그러려니’ 할 수준의 일들이었다. 물론 사건이 터진 당시엔 최악의 시나리오가 맞다. 그 순간의 심장은 늘 진짜로 무너지는 것처럼 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최악을 두고, 나는 마치 그 상황이 오기만을 바라듯 불안감을 스스로 폭증시켜왔다.

내 마음속에 무수한 아이언 돔을 만들어두고, 그 방어막이 많을수록 안전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문득 무수히 설치된 아이언 돔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GDP 대비 높은 수준의 국방비를 아이언 돔에 투자하는 게 맞을까.” 물론 업무니까, 프로페셔널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숙지’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숙지를 하랬지, 굳이 애써서 앞선 걱정을 하며 가뜩이나 자원도 빈약한 내 감정의 대부분을 이 불안한 예습에 쏟아붓는 것이 과연 맞는지. 나는 그 질문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래서 회사 일이건 집안일이건, 특히 회사일에 관해서는 내 마음속에 아이언 돔을 조금 ‘덜’ 설치해보려는 노력을 해볼까 한다.

물론 이 계획조차도 실패할 수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아이언 돔이 설치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앞선 걱정 때문에 내 감정의 결이 조금씩 불안으로 바뀌어가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지금처럼, 사무실에 홀로 나와 적막함이 흐르고, 아주 살포시 흘러나오는 JPOP을 들으며 노트에 ‘앞선 걱정’을 써 내려가던 손이 멈추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샤프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앞선 걱정을 적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비로소 그 손끝의 미세한 떨림에서 해방된 순간이 있었다.

내 감정 안에 눌어붙어 있던 ‘잘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이 휘발되는 걸 느꼈다. 그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거창한 자신감이 들어온 건 아니었지만, 대신 다소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해결된 것처럼 숨이 조금 더 길어지는 순간이란 게 있다는 걸, 오늘 나는 다시 배웠다.


오늘, 이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고 싶다.

“안 해도 될 걱정. 오히려 걱정을 초대해버린 걱정.”

나는 그동안 그 걱정들을 ‘준비’라고 믿었지만, 어떤 것들은 준비가 아니라 불안을 스스로 불러오는 호출 버튼에 가까웠다.

아이언 돔을 촘촘히 깔수록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올려다보는 횟수만 늘어났던 셈이다.


앞선 걱정을 쓰기 위해 내려놓은 샤프 덕분에, 오늘은 내 마음의 무게가 1그램 정도 가벼워진 것 같다. 아주 작은 단위라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겐 그 1그램이 꽤 크다.

과한 걱정은 줄이고, 조금은 더 집중이 잘되는 두뇌로, 그간 못 다뤘던 업무적인 노력을 오늘 하루,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 이어가 보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진짜로 지켜야 할 건 ‘완벽한 답변’이 아니라, 그 답변을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내 감정의 예산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 예산을, 아주 조금 아껴두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예산을 아껴보려 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