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로 시작한 아침이, 바다 앞에선 가족이 됐다

아이들 어깨 사이에 서서, 나는 다시 아버지가 됐다

by 빛담

1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오랜만에 나와 두 아이를 동반해서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집에서 약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강릉 바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이 바다를 나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었다.


나는 그간 마음이 많이 답답했던 것 같다.

집에서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그렇고, 그 밖의 다른 일들도 그렇고. 이런 답답함이 계속 쌓이면서, 마치 공기는 분명 있어서 숨은 쉬는데 찐득한 미세먼지 때문에 숨을 쉬는 내내 무언가 좋지 못한 느낌들이 내 몸에 쌓이는 기분이랄까.


사실 그냥 바다만 보러 가려는 순수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왕 간 김에 내가 평소 찍고 싶던 사진도 여유롭게 찍어보고 싶었다.

특히 파도. 그리고 동해의 낙조. 동해의 낙조는 서해랑은 좀 다르다. 해가 직접적으로 지지 않기 때문에, 하늘과 지평선 사이 그라데이션이 켜켜이 부드러운 카스텔라처럼 표현되는 것도 다른 점이랄까.

그래서 요 몇 주 동안 ‘언제 강릉을 가야 하나’ 고민만 하고 있던 터였다.


‘너무 오전에 가면 하루 종일 힘들 텐데.’

‘대중교통으로 가는 게 나을까? 나 혼자 가는 거일 텐데.’

‘날씨는 좋지 않을까? 덜 추워야 할 텐데. 미세먼지도 없고, 흐리지 않은 쨍한 대비의 날이었으면 좋겠는데.’


역시 나답게, 온갖 if와 and문들이 ‘강릉 여행’이라는 것을 가기 전부터 내 머릿속에서 수없이 연산하고 있었다. 결국 가기 전부터 늘 지쳐 버리기 일쑤다.


주말 하루 중 특근을 마친 토요일 밤, 이상하게 잠을 못 잤다.

정말로 어딘가 홀연듯 떠나고 싶은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다가도, ‘일단 자야지’ 하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런데 쉬이 잠을 자지 못한 채, 뜬눈으로 일요일 오전을 맞게 되었다.


여덟 시가 훌쩍 넘긴 다소 늦은 아침. 나를 비롯해 아이들 각자 방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우리 셋은 거실에서 반갑게 인사했다.

아직 큰애와의 앙금이 우리 둘에게 남아 있는 듯, 우리는 ‘하이’ 정도로 ‘안녕’을 영어로 바꾼 성의 없는, 말미도 힘이 없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 찰나, 문득 아이들과 오랜만에 여행을 가보고 싶어졌다. 어젯밤 ‘어디 갈까, 어디 가지’ 하며 홀로 떠날 장소를 떠올리던 와중에, 그간 미뤄두고 미뤄뒀던 ‘강릉 바다’가 생각났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조심히 제안해보기로 했다.

-꽤 긴 시간 아빠 차를 타고 가야 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짜증 1’도 내지 않겠다.

-큰애가 평소 가고 싶어 하던 강릉 아르테 뮤지엄에 데려다 주겠다.

-안목 해변가에 가서 평소 너희가 좋아하던 선물가게에서 원하는 것도 사주겠다.

-맛있는 밥도 사주겠다.


생각해보니 이 정도면 거의 ‘모시고’ 가는 수준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왜일까.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작은애는 내 예상대로 흔쾌히 “좋아”라고 말했다. 큰애는 살짝 망설이더니, “오케”라고 짧게 동의해주었다.


나는 신나서 겉옷을 여몄다. 카메라는 이미 어제 가방에 잘 쌓아두었더라. 그대로 가져가면 됐고, 삼각대를 추가로 차에 실었다.

우리 셋, 언제 또 모여서 같이 사진을 찍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와이프도 이럴 때 함께 가면 좋았으련만, 주말 이틀을 모두 일하는 바람에 4인 가족은 참 짬을 내기 어렵다.

그렇게 우리 셋은 중고로 산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고작 천 킬로미터도 못 탄 우리 차에 올라 강릉으로 향했다.


“아빠, 원래 나 친구랑 약속 있었는데 친구가 열이 나서 못 가게 됐대. 나도 오늘 할 일 생겨서 너무 좋았어. 고마워.”


그 말을 듣자 차 안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나는 운전대를 더 꽉 쥐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첫 숨이, 그때 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달렸을까. 신기하게도 오늘은 서울에서 강릉까지 한 번도 막히지 않고 쉽게 도달했다. 아마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날이 조금 추워서 그런 건 아닐까. 혼잣말을 되뇌며 말이다.

도착해서는 밥부터 먹어야 했다. 밥은 큰애가 먹어보지 못했던 ‘얼큰 순두부’였다. 원래는 초당순두부를 먹이려 했으나 주변에 잘 보이지 않아, 급한 대로 허기를 달랠 겸 들어간 곳이었다.

그런데 우리 셋 모두 밥에 코를 박고 먹을 정도로 정말 맛있는 집이었다. 아이가 잘 먹으니까 나도 좋았다. 이 느낌은 정말,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내가 아버지가 된 걸 잊고 있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잘 먹는 것만 봐도 이렇게 기쁜데, 왜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겉도는 느낌을 받았던 걸까.


식사를 하고, 우리는 짧지만 우리 나름의 강릉여행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큰애가 좋아하는 오죽헌에서는 큰애와 쫑알쫑알 신사임당과 율곡이이에 대해 떠들었다. 다음번에는 아이들 둘 다 좋아할 만한 아르테 뮤지엄으로 갔다. 표 가격이 조금 비싸긴 했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라 해주니까 나도 기분이 참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관람을 다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선물도 고르라고 했다. 큰애는 괜히 내 눈치를 보면서 3천 원짜리, 색깔이 예쁜 볼펜 하나를 고르더라고. 더 비싼 걸 골라도 되는데.


“아빠, 나는 안목 해변 가서 비싼 거 고를래.”

둘째는 남달랐다. 여기는 자기가 원하는 게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저 베짱. 우리는 오늘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안목으로 향했다.

안목에 도착하자마자 한낮에 받았던 태양의 온기가, 그나마 추웠던 대지를 녹여주는 느낌이랄까. 바닷가였지만 예상보다 바람은 세지 않았고, 바닷바람 특유의 미세한 소금기와 청량함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도 함께 들고 안목해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둘째가 염원하던 선물가게에서 약속대로 선물을 사주려 했는데, 둘째가 원하던 ‘두쫀쿠’는 없고 ‘쫀쿠’만 있었다.

아쉬운 대로 그걸 사줬더니 정말 작은 입을 오밀조밀 움직여가며 잘 먹고 있었다. 그걸 보는 내내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해가 지기 전 한 시간 반쯤. 서서히 해는 서쪽으로 누워가고 있었고, 우리를 바라보는 그림자들도 아주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강릉에 와서 꼭 찍고 싶던 ‘파도’를 담기 위해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고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의도치 않게 나에게만 파도가 깊게 몰아쳐 신발과 바지를 적셔버린 것이었다. 나답지 않은 방심이었다.


“아하하하.”

아이들 둘은 나를 보며 비웃었다. 비웃을 만하지. 평소의 나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똑바로 봤어야지”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으니까.


원래 나라면 짜증이 극도로 나서 기분 나빠했겠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기분이 좋더라.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가, 아니면 바다를 봐서 내 마음이 누그러져서 그런가.

평소 내가 싫어하던 ‘신발 젖은 모습’조차, 오늘은 왜곡되어 다른 형태로 내게 전달된 걸까.


그렇게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걸었고, 해변의 끝에서 나는 삼각대를 설치했다. 우리 아이들과 언제 또 이곳에 와보겠나 싶은 마음, 남들에게 부탁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교차했다. 요새는 그래서 평소 삼각대를 들고 다니고 있다.

나는 능숙하게 설치한 뒤, 아이들 어깨 사이에 우뚝 서서 어깨동무를 해주곤 포즈를 취했다.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도, 꽤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그 순간이, 우리 셋의 즐거웠던 짧은 강릉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 된 듯했다.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참 고마운 하루였다. 특히 큰애에게. 평소 무뚝뚝하고 나와도 많이 다투는 편인데도, 선뜻 아빠를 따라나서준 마음씨 고운 딸.

즉흥적이었고 유난히 추웠던 강릉 바다의 온도를 온몸으로, 또 발로 느꼈던 그날의 기억이 앞으로 내게 밀려올 미세먼지를 당분간 막아줄, 조용하지만 든든한 ‘마스크’가 되어줄 것 같은 느낌으로 기억될, 따뜻했던 강릉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