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돼, 도쿄?
책을 ‘내는 것’과 ‘도달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잠시만, 교토』를 만들고 팔아보면서, 나는 비로소 그 차이를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 차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견뎌준 사람은, 나의 전속 디자이너인 아내였다.
우리는 『잠시만, 교토』를 어떻게 알릴지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대화의 연장선에서 ‘북페어에 참가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곳에서 책과 관련된 엽서북이나 책갈피 같은 굿즈를 만들어 함께 소개해보자는 이야기, ‘내 책을 판다’라기보다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더 도달하게 하는 일’을 창작자가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결론까지. 그 대화는 자연스럽게 후속작으로 흘러갔다.
북페어 같은 자리에 참가하려면, 서가에 꽂힐 책이 최소한 세 권은 있어야 한다는 와이프의 현실적인 말도 듣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잠시만, 교토』의 ‘다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후속작 후보는 두 개였다. 『잠시만, 제주』와 『잠시만, 도쿄』.
『잠시만, 제주』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 내려간 친한 형을 기반으로, 직장과 사업의 감각을 엮어 에세이로 풀어보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내게 도쿄를 제안했다. “당신은 일본 사진이 더 느낌이 좋아. 일본 도쿄로 해보자.”
내 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이 내게 내린 판단은, 생각보다 정확할것이다. 그 말은 취향이 아니라 나의 사진 정체성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원래 11월 말에 도쿄에 가려고 했다.
1년의 업무가 거의 끝나고,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단풍을 보며, 이번에도 도쿄에서의 여행기를 글과 사진으로 남겨보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한 문장을 내게 던졌다.
“당신, 벚꽃이 흩날리는 걸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지 않냐.”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정말 그랬다. 어디를 다녀와도 ‘벚꽃이 피었을 때의 사진들’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가도 돼, 도쿄?” 허락을 받기 위한 질문이었지만, 사실은 내 마음을 설득하기 위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 역시 몇 번이고 되물었다. “정말 내가 가도 돼, 도쿄?”
그 과정을 지나, 결국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9일 일정의 항공권을 결제했다. 『잠시만, 교토』 때와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이상하게도 그 선택은 지금 내게 위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행 날짜를 잡았다고 책이 저절로 써지진 않는다.
『잠시만, 교토』는 지인들에게서 “괜찮다, 잘 읽힌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바랐던 바이럴 마케팅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초반에 광고비까지 써봤는데도 반응이 없다는 건, 노출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내는 역시 정확했다. 이번에 세상에 나온 『잠시만, 교토』의 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 하루차로 이어지는 사진일기라, 사진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편하게 넘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어지는 개선 포인트를 듣는 순간, 더 아팠다.
“너무 밋밋해. 원래 기획했던 ‘체험하고 깨닫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진 여행이 됐어. 교토와 일본을 설명하는 깊이가 부족해.”
그 말 앞에서 나는 변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루차’라는 형식의 서술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 테마별로 챕터를 묶기로 했다.
일본에서 젓가락을 놓는 방향 같은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해, ‘왜 그럴까’로 내려가고, 다시 사진으로 올라오는 방식. 일본의 서서 먹는 문화가 왜 생겼는지, 편의점의 풍경은 왜 그런지 같은 질문을, 정보 전달로 끝내지 않되 ‘내가 우연히 걷다가, 먹다가, 기다리다가 발견한 깨달음’으로 확장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근거가 되어줄 일본 영화, 드라마, 노래까지 함께 엮기로 했다. 사진이 약해지지 않도록, 이야기가 사진을 지탱하게 하고, 사진이 이야기를 증명하게 만드는 구조를 꿈꾸게 됐다.
어제 나는 예전에 짜둔 기획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16개의 테마를 정리했고, 각 테마가 어떤 줄거리로 뻗어갈지 초안을 거의 완성했다. 그걸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생각보다 너무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 1시까지 에너지를 다 발산하며 몰입했다.
일본어 시험(12월 7일)을 끝낸 뒤, 결과를 기다리며 어딘가 무기력해져 있던 나에게 그 몰입은 오랜만의 생기였다. 나는 결국 나를 지탱해줄 에너지가 필요하고, 남들이 보기엔 무리로 보여도 그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사는 방식이 내 삶이라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계로 가보기로 했다. 이번 『잠시만, 도쿄』는 출판사에 투고를 두 번 시도할 생각이다. 첫 번째는 지금의 아이템과 목차, 기획을 더 정제해 “이런 방향으로 쓰겠다”는 의향을 먼저 보내고, 개선해야 할 지점이나 방향을 피드백받아보는 투고다.
“원고가 완성되면 보내드려도 될까요?”라는 질문까지 함께 담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4월 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5월까지 글을 계속 쓰고, 6월부터 7월까지는 책을 만드는 시간을 거치며, 일정 수준의 원고가 완성되면 두 번째로 기획출판사에 일부 원고를 보내 출간 의향을 다시 묻기로 했다.
『일상의 빛과 그림자』와 『잠시만, 교토』를 POD로 만들며 나는 이미 깨달았다.
출판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도달은 더 어렵다. 책을 구매하는 인구는 줄어드는데, 책을 내겠다는 사람은 늘어난다. 하루에도 세상에는 수십 권의 책이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해서, 독자가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내 이야기를 들어줄 리는 없다는 사실을 나는 꽤 선명하게 배웠다.
그래서 이번 기획출판을 위한 투고가 수포로 돌아가도 괜찮다.
어차피 나는 다시 독립출판이나 POD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앞서 이야기했듯 되든 안 되든 출판사 투고를 반드시 해볼 생각이다. 이번엔 한 발짝만 더 나아가 보고 싶다. 운이 좋아 기획출판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테고, 아니라 해도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올해는 그렇게 어딘가의 북페어에 참가해 『일상의 빛과 그림자』, 『잠시만, 교토』, 그리고 『잠시만, 도쿄』까지 세 권을 서가에 꽂아두고 싶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표지를 보고 멈춰 서고, 한 장을 넘기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져가 준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는다. 많지 않아도, 한두 명이라도, 듣게 돼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오늘도 한 번 더 계획을 세우고, 한 번 더 쓰기로 한다.
이 글이 훗날 『잠시만, 도쿄』 책에 실릴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잠시만, 도쿄』가 시작되는 첫 기록이다. 벚꽃이 피기 전, 내가 먼저 흔들린 마음을 붙잡아두는 기록. 결국 나는 또, 한 번 더 도쿄로 간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진 여행’이 아니라, 내가 발견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 간 깨달음도 함께 버무려, 도쿄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