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책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를 채우기로 했다

흉내 내지 않기로 했다. 나답게 쓰기로 했다

by 빛담

앞서 브런치에 투고한 대로, 나는 현재 『잠시만, 도쿄』를 기획하는 중이다.

차기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시만, 교토』 때 작성했던 글의 형식을 이번에는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일기처럼 흘러가는 기록보다, 아이템 단위로 사진과 글을 나눠 정리하는 방식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도쿄라는 도시, 더 나아가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자주 방문하는 곳이지만, 나는 이번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쳤을 일본의 모습들”을 더 세심히 관찰해보고 싶었다.

이번 책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출판사에 기획투고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심이 생기자 질문도 같이 생겼다. 이게 팔릴까. 누군가가 내 책에 비싼 책값과 시간을 기꺼이 내줄까. 이런 이야기를 동료에게 털어놓자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달라서 정의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정답 같은 말인데도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정답보다 확신이 필요했던 탓이다.

그 무렵 우연히 SNS를 보다가, “잘자, 내꿈꿔”라는 카피로 유명한 박웅현 작가가 숏폼에서 했던 말을 들었다.

지금의 나처럼, 콘텐츠를 만들기로 한 뒤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는 건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였다. 평소에 좋은 영화, 드라마, 그리고 좋은 책등. ‘좋은 것’들로 자신을 꽉 채워둔 사람은, 그 축적이 폭발력이 되어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지점에서, 잠시 멍하니 폰을 바라보며 작가님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게 되었다.

『잠시만, 교토』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사진, 글은 좋아하지만, 애초에 꿈꾸던 “서사가 있는 체험형 여행기”가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분주해보이는 사진 작가의 여행기의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아쉬움이 한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밑바닥에는, 곱씹을수록 “콘텐츠 체력”이 약하다는 자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질문이 바뀌었다. 뭘 더 찍고 어디를 더 갈지를 고민하기보다, 글 속에 들어갈 ‘땔감’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보와 촬영기법을 더 배우기 전에, 전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인문학 소양과 그에 맞는 사색을 먼저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부분을 꽤 오래 소홀히 했고, 게을렀다.


그래서 평소 책을 읽을 때 영감을 받거나 마음에 드는 문장을 모으는 방식도 이번 기회에 바꿔보기로 했다.

아이패드에 필사를 하기도 했지만 팔이 아프고, 무엇보다 필요할 때 찾아보기가 불편했다. 이제는 문장을 “타이핑”으로 축적해두기로 했다. 그 첫 책으로 고른 건 공교롭게도 앞서 숏폼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라는 책 이었다.


그 책에서 특히 멈춰 선 문장이 하나 있었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습니다. 절대 옳은 선택은 없는 겁니다. 선택하고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내가 왜 요즘 그렇게 불안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기획투고에 성공할 수 있을지,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계속 ‘정답’을 찾고 있었는데, 그 문장은 정답이 아니라 “과정”을 말하고 있었다.

선택은 결국 내가 하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건 이후의 태도와 노력이라는 삶의 본질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마침 어제, 아내는 친한 독립서점 사장님을 만나고 왔다. 작년에 계획했던 사진 에세이 북토크가, 나보다 훨씬 유명한 에세이 작가와 함께 진행해보려 사장님께서 힘써주셨지만, 결국 그 작가가 제안을 거절해 무산됐다는 비하인드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아내는 그 작가의 사진 에세이를 한 권 사 왔다며 내게 읽어보라고 내밀었다. 아내의 의도가 나와 그 작가의 콘텐츠 우열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추구하는 건 이런 거지? 따스하고, 공감해주는 추구미.”

책을 읽어보니 사진과 글의 페어링이 단단했고, 톤앤매너와 메시지가 일관됐다. 무엇보다 글에 본심이 묻어났다.

나는 그제서야 왜 이 책이 많이 팔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내는 덧붙였다. “네가 저 사람처럼 쓰긴 어려워. 흉내 내기보다 너를 더 솔직하게 드러내서, 그 솔직함으로 공감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조언은 『여덟 단어』에서 만난 문장과 맞물려 내 방향을 정리해줬다.

완벽한 선택은 없으니, 선택한 것을 옳게 만들어가는 쪽으로. 더불어 독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만을 좇다가, 자칫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길로 흘러갈 뻔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발간할 『잠시만, 도쿄』를 콘텐츠가 빈약하게 느껴지는 책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콘텐츠 체력’이 전작보다 더 느껴지는 책이었으면 한다. 그걸 위해 비록 늦긴 했지만, 남은기간 스스로 좋은 콘텐츠들을 더 많이 접하면서 체력을 배양해보려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를 그려가는 과정에서 “나답게 쓰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이고 분주하게 사는 직장인의 속도로 걷되, 피사체를 보는 눈만큼은 상냥한 사람의 기록. 늘 바쁘게 살려 애쓰지만, 그 이면에는 번아웃 직전의 피로와 휴식이 필요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까지 숨기지 않는 글. 나는 그런 솔직함이 사진과 함께 묶였을 때, 조금은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직은 『여덟 단어』로 문장 모으기 한 권을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벌써 절반이상을 해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까.

차기 여행 에세이의 출간 성공이라는 세속적인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이 작은 변곡점이 내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