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놓인 곳에서 ‘남을 위한 나’도 내려놓기로

by 빛담

'잠시만, 교토'가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온라인으로만 책을 팔았다. 인스타그램에서 홍보하고, DM로 안내하고, 결제 링크를 걸고, 그렇게 조용히 ‘잠시만, 교토’를 독자분들께 보내드리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 단 한 곳, 예외가 생겼다. 마포 홍대 근처의 독립서점 ‘독서관’. 이전에 내 전작 ‘일상의 빛과 그림자’를 그곳에 입고했던 건 와이프였고, 이번에도 와이프가 사장님께 요청을 드렸던 모양이다. 사장님은 이번에도 흔쾌히 받아주셨고, 내 책은 지금 오프라인으로는 오직 그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다른 독립서점들에도 입고 문의를 할까 고민하는 단계다. 내가 쓴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달해 그들에게 내 이야기가 닿을 수만 있다면.


나는 사실 사장님은 내가 아닌 와이프와 연이 있으니, 굳이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굳이 새 인연을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인연에 기대는 쪽이 더 편하니까. 그런데 우연히 홍대에서 미니 소설 원데이 클래스가 있는 날이 생겼고, 그 김에 겸사겸사 서점을 찾아가게 됐다. 가기 전부터 마음이 먼저 오그라들었다. “사장님이 꽤 조용하신 분이야.” 와이프의 그 한마디 때문에, 대화가 끊기면 어떡하지, 내가 괜히 와서 민폐가 되면 어떡하지, 혼자 마음속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홍대 KT&G 상상마당 근처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마치고, 약 15분쯤 걸어 독서관으로 향했다.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사장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운영하시는 계정을 미리 살펴보긴 했지만 얼굴은 잘 나오지 않았고, 아니지. 혹은 내가 그닥 관심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둘 다 맞을 것이다.

그런데 문 앞에서 그런 생각은 금방 접혔다. 반듯하고 단정한, 정말 ‘반듯하게 자라오신 것 같은’ 남성분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서 커피를 사 들고 갔는데, 예상보다 가격이 조금 저렴해 오히려 민망했다.

그래도 빈손보다는 낫겠지 싶어 노란색 커피 전문점에서 두 잔을 받아 들고, 서점 문을 두드렸다. 커피를 주섬주섬 건네자 사장님이 “어쩐 일로 오셨어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조금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저… ‘잠시만, 도쿄’를 쓴 박종화 작가입니다.”

말이 살짝 꼬였는데, 사장님은 그 틈을 정확히 채워주셨다.

“아, ‘잠시만, 교토’ 말씀하신 거죠? 도쿄 아니고.”


그 찰떡 같은 정정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내가 준비해온 긴장과 겁을 그 한 문장이 슬쩍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사장님은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미리 들었다며, 오늘 내가 클래스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고 했다. ‘대화가 끊길까 봐’ 걱정했던 나는 그 순간부터 조금 가벼워졌다.

사장님께서는 편히 앉기를 권유하셨고, 내가 앉은 자리 옆에는 마침 ‘사진 에세이’ 서가가 있었다. 그리고 신간이라 그런지 내 책이 가판대에서 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새 책이 계속 들어오면 언젠가 밀리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자리가 내 자리였다. 그 “지금 당장”이 주는 기쁨은 의외로 크게 마음을 채웠다. 나는 그 가판대를 보며, 내가 온라인에서 혼자 조용히 팔고 있던 책이 누군가의 공간 안에 “제법 당당하게 놓여 있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나는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생각보다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책을 쓰는 이유”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진 이야기로 넘어갔다. 사장님도 사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비즈니스적으로만’ 하려면 “책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로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 공통점을 탐색하는 순간부터 결국 이야기가 생긴다는 걸. 작가와 서점 주인의 대화는 거래가 아니라 교환에 더 가까웠다. 서로가 조금씩 말하고, 조금씩 듣고, 그 속도가 꽤 잘 맞았다.


이야기 중 나는 요즘 ‘잠시만, 도쿄’를 기획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3월 말, 벚꽃 시즌에 도쿄에 가서 사진을 담아오고 싶다고. 그리고 이번엔 ‘잠시만, 교토’의 1일차 2일차 방식도 좋았지만, 그 형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템으로 묶어서, 여행 에세이의 정수를 한 번 써보고 싶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사장님은 오히려 다른 방향의 말을 해주셨다. 기성출판을 하다가 독립출판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많고, 그 이유 중 하나는 기성출판이 결국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야 하는 구조라서 싫어서라는 것.


나는 사실 마음속으로 기성출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지금 내가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어딘가 모자란 자리를 채워주는 ‘증명서’ 같은 걸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그 말은 내 마음 한쪽을 은근히 찔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더 말했다. 글을 200페이지쯤 쓰다 보면, 사진과 글이 합쳐진 그 결과물은 결국 ‘나 자신’이 된다. 나의 추구미가 되고, 나의 결이 된다. 그래서 내가 글에 거짓말을 쓰면 독자들은 다 안다. 그러니까 나다움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다른 사람들의 니즈도 맞춰보고 싶다고. 확장성을 생각한다는 말이었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의 고백이기도 했다.


그때 사장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건네셨다.


독립출판에도 좋은 책이 너무 많고 훌륭한 책이 많다. 그런데 자기가 이 책방이 좋았던 이유는, 개성이 넘치는 책들이 계속 오고, 그리고 그 개성을 봐주는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덧붙이셨다.


“작가님은 본업도 있으신데, 굳이 남을 들으라고 쓰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나는 그 말을 듣고 2~3초 정도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누가 ‘글쓰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삶 전체를 가볍게 들어 올린 느낌이었다. “남을 위해 글을 쓰지 말아라”는 말이, 내게는 “너무 남을 위해 살지 말아라”로 들렸다.

나는 일을 할 때도 자주 남을 위해 일한다. 눈치를 본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먼저 계산하는 편이다. 가족은 오히려 내가 챙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도 많으면서, 정작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기대에는 꽤 성실하게 맞춰 살아왔다.

그래서 그 한마디가 좋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누군가 아주 담담하게,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를 대신해 말해준 것 같아서.


그 뒤로는 교토에서 어디를 다녀왔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화는 대략 스무 분 정도 흘렀다. 나는 집에 가야 했고, 사장님께 양해를 구한 뒤 내 책이 놓인 매대를 한 장 찍었다. 그리고 기쁘게 서점을 나왔다.

비록 커피는 저렴한 걸 들고 갔지만, 독서관을 나오면서는 이상하게 ‘스타벅스 이상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산 건 커피가 아니라, 그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내 마음을 꽤 많이 채워줬다.

내 책이 오프라인 서점, 단 한 군데에 놓였다는 사실보다도, 어쩌면 나는 오늘, “남을 위해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한 문장을 사러 그 서점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KakaoTalk_20260124_20302606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