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2주 뒤인데, 마음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by 빛담

<잠시만, 도쿄>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 이제 2주 앞으로 다가왔다.

8박 9일간의 사진 여행. 전작인 <잠시만, 교토>에서 경험했던 꿈같던 순간들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데, 그리 오래지 않은 따스한 봄날에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일본의 수도로 향하게 된다. 사진여행 에세이 출간을 이유삼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짐도 싸지 않았다. 여행용 28인치 캐리어도 창고에서 꺼내지 않았다. 사실 짐이라고 해봐야 별것은 없다.

예전 교토 사진 여행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현지가 한국보다는 다소 더운 편이라, 옷가지들을 많이 챙겨간 것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일까. 캐리어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결국은 옷가지들이 되겠지.


지금 떠오르는 준비물도 크게 보면 그 정도다. 그만큼 이번 여행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한국도 날씨가 온화해져 봄 기운을 완연히 느낄수 있듯이, 일본의 날씨를 보니 그곳도 꽤 따뜻한 모양이다. <잠시만, 교토> 때처럼 반팔 위주의 옷차림에 가디건 몇 벌만 챙기면,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여행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도쿄 사진 여행을 위한 일정은 이미 빼곡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 동선대로 여행을 마친다면, 책을 한 권 낼 만큼의 원고와 사진 분량은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의욕이 없다.

작년 <잠시만, 교토>를 준비하던 때에는 일본어 능력시험도 함께 준비하고 있어서였는지, 지금보다는 더 의욕이 넘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때도 출발 전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고, 이 나라가 우측통행이 아니라 좌측통행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낀 순간부터, 그제야 사진 여행의 마음이 천천히 켜지기 시작했었다.


아마 여행의 마음이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출발하기 전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낯선 공기의 한가운데에 서야 비로소 고개를 내미는 것. 아마도, 그 낯선 도쿄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부터, 내 손끝과 눈은 도쿄의 다정한 피사체들에 오롯이 집중하게 될것으로,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신경이 쓰이는 부분으로는, 여행을 떠나는 시기의 문제가 조금 있다.

회사에서 가장 바쁠 때, 나 혼자 워킹데이 다섯 날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내가 없어도 회사 일은 문제없이 돌아가도록 준비해 두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마음 한쪽이 계속 신경 쓰인다.

아마도 알량한 나의 작은 책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책임감은 내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느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고 있는 단계다.


<잠시만, 도쿄>를 떠나기 전, 전작을 출판하며 느꼈던 것들도 분명 많았다.

조금 더 많은 독자에게 나의 글과 사진이 닿을 수 있도록 콘텐츠의 질을 높여야겠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닮고 싶은 작가들의 책을 더 많이 읽고, 그들의 문장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메마른 내 마음속 저수지를 다시 채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하고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러 현실적인 일들이 겹치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 마음속 저수지에 물을 채우는 일’을 조금은 게을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 어느덧 여행을 2주 앞둔 시점이 되었다.

결국 시간은 흘러, 현재의 2주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이어서 8박 9일간의 <잠시만, 도쿄>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책의 이름처럼 그 ‘잠시만’의 시간을 지나,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겠지.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는 과정들 속에서도, 그래도 이번에도 전작처럼 무탈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잘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비용을 내고 내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앞으로 다가올 <잠시만, 도쿄>라는 시간을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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