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세뱃돈을 받고 싶은 어른이다

나는 왜 아직도 주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by 빛담

<세벳돈>


나이를 먹어갈수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그대로인데,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만 달라졌다는 느낌.

어느새 나는 덕담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건네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세뱃돈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주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릴 적 나는 세뱃돈을 주시던 친척 어른들이 모두 넉넉한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다. 봉투를 내미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어 보였고, “공부 열심히 해라” 같은 말들은 늘 여유 위에 얹힌 덕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받는 입장이었기에, 그들의 사정은 짐작해본 적도 없었다. 주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때 그 어른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갑을 열 수 있다. 형편이 그들보다 못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기꺼이 꺼내지 못하는 걸까.

왜 한 번 더 생각하고, 액수를 가늠하고, 타이밍을 재고 있는 걸까.


여전히 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나이는 앞자리가 바뀌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받는 사람’의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닐까. 주는 일은 책임처럼 느껴지고, 받는 일은 여전히 자연스럽다.

변한 것은 역할뿐이고, 나는 그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동네 슈퍼 앞에서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라” 하며 허허 웃던 큰외삼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한마디에 세상이 넓어졌던 어린 날의 오후.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말이 단지 넉넉함의 표현이 아니라, 기꺼이 주는 사람의 태도였다는 것을.


어쩌면 세뱃돈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지갑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의 문제. 받는 쪽을 향해 있던 마음을, 천천히 건네는 쪽으로 돌리는 일.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국 그 방향을 바꾸는 연습을 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방향이 언제쯤 바뀔수 있을지, 사실 잘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