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이라 쓰고, 일기라고 읽는다.

by 빛담

#1, 두려움

계절은 어느새 봄이 되었지만, 나의 계절은 조금 다르다. 겉으로는 꽃이 피었는데, 마음은 오히려 겨울을 준비하는 기분이다.

고객사와의 마찰로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2월이 지나갔다. 오늘만큼은 이 글을 온전히 나의 일기장으로 두고 싶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내 기준에서만 솔직해져 보는 기록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할 만큼의 실력도, 능력도 없다고 여겼던 사람들로 인해 꽤나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의 모양을 조금은 알아보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내가 하기 싫은 일에는 에너지가 나지 않는 사람이다. 반대로,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에는 이상할 만큼 깊이 빠져든다. 2년 가까이 일본어를 공부하던 시간도 그랬다. 회사에서 일이 비는 틈마다 책을 펼쳤고, 그 몰입은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놀라움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납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는 일, 내가 설득되지 않은 일 앞에서는 다르다. 그럴 때의 나는 그저 끌려가는 사람에 가깝다. 겉으로는 해내더라도, 진심이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지친다.


지금 내가 마주한 일에는 업무 이상의 감정이 섞여 있다. 그 감정이 일을 더 무겁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선택할 수는 없다. 나 하나의 감정으로 팀의 분위기를 흐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팀원들의 근로 여건을 지키는 것, 그것 또한 내가 맡은 중요한 역할이니까.

그래서 가끔은 지나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차라리 나만 사라지면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도망은 잠시의 안도일 뿐, 결국 또 다른 두려움으로 돌아온다.


요즘의 나는 불확실성 앞에 서 있다. 앞으로 함께 해내야 할 일들은 아직 형태도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두렵다. 내가 이 일을 끝까지 설득할 수 있을지,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러간다.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었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쩌면 두려움은, 내가 아직 이 자리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고 문장을 맺는 나를 보면 그렇다.


지나가겠지.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2,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요즘의 나는, 평소와 다른 패턴에 유독 예민해져 있다.

누군가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개인 메시지를 보내온다든지, 그다지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든지. 그런 작은 변화 앞에서 반가움보다 경계심이 먼저 올라온다.

‘왜지?’

의심은 늘 이유보다 빠르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쓴다. 분명 상대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까. 모든 변화에 숨은 의도를 붙이는 건 결국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 역시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한 적이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개인 메신저를 보냈다.

혹시라도 그가 놀라지 않도록, 용건을 미리 밝히며 경계심을 낮추려 애썼다.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평소와 달리, 그가 나를 경계하는것 같은 느낌. 그 순간 묘하게 당황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서운함이 올라왔다.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든 걸까, 아니면 그가 나를 경계하는 걸까.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문장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마음이 동시에 흔들렸다.

그 일을 지나며 한 가지를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잠시 긴장한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타인의 작은 변화 앞에서 똑같이 긴장한다는 것.


결국 우리는 모두, ‘익숙함’이라는 안전지대 안에서 안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패턴은 신뢰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 패턴이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재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나는 은근히 그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평소처럼 살갑게, 반갑게 나를 맞아주길 말이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꽤나 전형적인 나의 태도였다.

나는 나의 행동에는 맥락을 붙이면서, 타인의 반응에는 기대를 먼저 얹는다. 내가 하는 만큼은 이해받고 싶고, 내가 주는 만큼은 돌려받고 싶어 하는 마음.

분명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모두가 각자의 사정 속에서 조심스럽게 선을 그리고 있다면,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해석이 아니라 여백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조금 덜 기대하고, 조금 더 이해하려는 마음.

타인의 낯선 패턴을 두려움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음’으로 남겨두는 연습. 그리고, 타인의 예기치 못한 낯선 패턴에도, '그럴 수도 있음' 으로 남겨두는 연습.


요즘의 나는, 그 연습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느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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