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켜버린 마음, 옮기고 싶은 마음
"종화, 너 차라리 G수석님 쪽 자리 나면 거길로 옮기는 건 어때?"
점심 식사시간, 나의 평가자인 팀 리더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로, 내 속마음을 모조리 들킨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G수석님… 쪽은 자리나 있대요?” 말끝은 웃음기를 살짝 머금은 채였다. “아마 요새 불경기라 사업이 안 되나 본데, 거기도 쉽진 않은가 봐.”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속으로 ‘역시나’라고 정리해버린 채, 남은 식사를 마저 삼키며 위와 상관없는 자잘한 대화들을 이어 나가기 바빴다.
사실 나는 이미 1년 전부터, 내가 맡고 있는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고 있었다.
처음 이유는 ‘권태’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작은 팀의 리더로서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각자 구성원들의 할 일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일은 내가 해내야 했다. 처음엔 그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팀에 도움이 된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나머지 일’은 내가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갔다. 그 결과로는 스스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고, 다른 팀원들의 문제해결능력만 키워주고, 나로서는 관리자로서의 확실한 역할도, 개발자로서의 역할에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사람’이라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원초적인 ‘성장 본능’에 의한 이야기였다면, 1년 전부터는 함께 일하는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 채, 그저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 무조건 안 해주려는 사람으로 이미지가 안 좋은 방향으로 쌓여갔다고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도 싫게 다가왔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디펜시브한 태도를 보인 건 아니었다. 잘 해줬을 때 받는 온건한 피드백은 나를 한층 더 희생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연료였으나, 고객사도,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바뀌면서, 나는 어쩌면 과거에나 확실했던 그 연료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고, 오롯이 그 연료만 내 몸속에 들어와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같은 일을 반복하며, 나의 커리어가 내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지 못하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동시에, 사내에서 이만큼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없기 때문에, 마치 끌려가듯 불확실한 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커졌다. 그리고 고객사로부터 ‘존중받고 있지 못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작년 초여름에는 그 일을 가시화해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 실제 옮기려는 과제의 매니저가 바로 G수석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작년부터 가시화된 나의 사내에서의 거처 이동이, 몇몇만 아는 ‘알음알음’의 개념이었다면, 지금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히스토리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 또한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건 내가 그 일을 시도했다는 사실과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 몇 주간, 2년 전 정말 크나큰 감정을 소모하며 ‘내가 이 조직을 떠나야겠구나’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그 사건을, 고객사에서는 다시 한번 리바이벌 하고 있었다. ‘우리가 옳고, 그들(종화)은 틀렸다’는 식으로, 이미 그들 사이에서는 결론을 지어버린 듯한 문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토록 “이걸 하겠다면, 나를 밟고 가라”라고 할 정도로 극렬히 반대했던 일이지만, 협력사 따위의 배수진이 그들에게 먹힐 리 없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상실감 속에서, 다가올 그들과의 오프라인 미팅을 준비하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 나의 상사와 우연찮게 오전부터 꽤 많은 업무 이야기를 나눈 뒤, 또다시 우연찮게 점심 식사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그는 나를 꽤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가뜩이나 예민하고 민감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아는지라, 그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그냥 일’일 뿐이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이행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하고 싶지 않은 걸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 앞에서, 내가 정말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내 매니저는 이미 알아차린 듯했다.
비록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오고 있지만, 남들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고 그간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해왔다는 사실은 스스로의 자부심이었다. 그렇기에 내 매니저가 “다른 곳으로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한 그 한마디는, 평소 같았으면 에너지도 남아 있고 열정도 있어 기분 나쁘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런 나를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결국, 모든 걸 다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스스로의 비극은 아닐까. 편하고 쉬운 일, 그리고 내가 존중받길 바라는 일, 즉 내 말이 먹혔으면 하는 일. 그러면서도 내 커리어를 잘 쌓고 싶은 일.
이걸 교집합 하면 아마 우리나라에 없을 듯하다. 미국이라고 있을까? 일본이라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몇 년 전,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이 잠깐의 ‘교집합’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 건 온전히 내 착각이었으니까.
뭐 하나는, 아니 두 개는, 혹은 그 이상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제는 알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으나, 지키고자 하는 핵심 가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지상낙원의 ‘일’이 나를 위해 레드카펫을 펼쳐두고 기다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은 레드카펫이 아닐지언정, 추후 나의 행동으로 레드카펫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나는 너무 지금의 편안함이 너무나도 오래되어, 다음 행선지마저 당연하지 않을 ‘레드카펫’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곳은 없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