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않은 그림 한 컷: 1명과 4명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각자의 ‘팀’으로 흩어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1시쯤이면 같은 파티션에서 일하던 사람들 절반 이상이 자연스럽게 밥친구를 찾아 자리를 뜬다. 그때 남는 공기는 묘하게 비어 있고, 밥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끼리는 다소 머쓱한 얼굴로 “우리… 갈까요?”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나는 그 무리를 마음속으로 ‘점심시간 유나이티드’라고 부른다. 마치 조기 축구회처럼, 평소엔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때가 되면 같은 타이밍에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나는, 평상시 그 정체 모를 팀에 속해 있는 편이다.
사실 나는 원래 점심을 혼자 먹는 편이었다. “원래”라는 말을 쓰기엔 몇 년 안 된 습관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 먹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혼자 먹는 날이면 에어팟을 귀에 꽂고 소리를 차폐한 뒤, 잠깐 엎드려 자다가 남들과 다른 타이밍에 여유롭게 내려가 식사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에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혼자가 되고 싶었는데도 하필 그 타이밍을 놓쳤다. 얼떨결에, 정말 얼떨결에 여섯 명과 함께 내려가게 됐다.
배식을 마치고 제일 먼저 테이블에 도착한 건 나였다.
여섯 명이 앉을 만한 자리에는 4인 테이블 두 개가 붙어 있었고, 나는 한쪽 4인석을 선점하듯 먼저 앉았다. 내 대각선으로 늘 같이 밥을 먹는 선배가 앉은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그제서야 잠깐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돌아와 보니 반대편 테이블에는 1명, 2명, 3명… 사람이 차곡차곡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인 ‘다음 사람’이 자리를 찾다가, 결국 내 앞을 두고 반대편 3명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내가 예민한 걸까. 이미 그쪽은 세 명이 앉아 있었는데, 굳이 그 빈틈에 들어가는 모습이 어딘가 웃기면서도 웃기지 않았다.
그림은 이랬다. 나는 4인석에 혼자, 그 옆 4인석은 네 명이 꽉 차 있는 상태. 보통이라면 한 명이 옆으로 이동해서 2명 3명으로 자연스럽게 리밸런싱이 되는 게, 내가 배워온 친절과 배려의 기본값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에 배식을 받은 분이 내 앞에 앉으면서, 여섯 명은 간신히 한 테이블처럼 식사를 시작했다.
오늘의 식사시간, 내 앞자리에 앉는 걸 사실상 ‘피했던’ 그 동료가 자꾸 눈에 걸렸다.
사실 그는 전혀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아주 가끔 그와 엘리베이터를 단둘이 타게 되면, 나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도 비슷한 표정으로 침묵이 길어진다. 곱씹어 생각해보니, 우리는 애초에 어색했던 사이는 맞는 것 같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그는 나보다 늦게 팀에 합류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조직에 적응하려고 내 이야기를 억지로 들어주던 때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금 같으면 전혀 웃어주지 않을 나의 말에도, 그때는 굳이 리액션을 해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도 이 조직에 뿌리를 내렸고,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반면 나는 홀로 독고다이 하는 푸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푸르지만 늘 바람만 더 가까이 두는 사람이다.
그와는 물리적 자리는 가까운데 반해 하는 일이 달라 업무적으로 교집합도 거의 없고, 간신히 몇 번 나눈 대화 속에선 살아온 궤적의 결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특히 육아관 같은 걸 이야기할 때면, 나와는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마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쉽사리 친해지기 어려운 사이라는 걸.
그래서였을까. 오늘의 우연한 점심은 그 거리감을 다시 한 번 ‘실제로’ 체감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꼭 내 앞에 앉아야 했던 건 아니지만, 보통이라면 그 자리가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을 상황에서조차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혼자만의 망상과 감정에 꼬리표를 붙여가는 과정이라면, 만약 내가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 그의 앞에 앉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또한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 있다’고 넘겼을까. 아니면 나처럼, 설명할 수 없는 서운함을 잠깐이라도 느꼈을까. 실로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어찌 되었든 감정을 티 내지 않는 게 프로다.
우리가 받는 월급의 일부는,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하루를 굴리라는 비용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식사 후 화장실을 오가며 우연히 조우한 그에게도, 나는 평소처럼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인사 하나로, 오늘의 감정은 다시 제자리로 접혀 들어갔다.
관계란 그래서 어렵다. 불편하지만 불편한 티를 내면 안 되는 관계가 있고, 너무 좋아하지만 그것도 티를 내면 안 되는 관계가 있다. 반대로 너무 싫어하지만, 그것조차 티를 내면 안 되는 관계도 있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티를 내지 않는 기술’로 서로를 지나친다.
오늘 점심은, 그 기술이 얼마나 사람을 조용히 지치게 만드는지 보여준 한 끼였다.
누군가 내 앞에 앉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운했던 게 아니라, 그 사소한 움직임 하나에도 내가 관계의 온도를 재고 있었다는 게 더 서늘했다.
회사라는 곳에서는 내 감정이 늘 퇴근을 못 한다. 표정은 정리되고, 인사는 먼저 나오고, 마음은 늘 한 박자 늦게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그와 마주쳤을 때도 평소와 같은 톤으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고, 그 말 뒤로 점심시간의 기억이 슬쩍 떠올랐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불편했던 점심시간의 감정은, 결국 조용히 내 몫이 되어 버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