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열심히 놀아주다보면 서로 지루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아직 배밀이도, 기지도 못하는 아기가 할 수 있는 건 매트 위 조그마한 이불에서 뒹구르르 연습했다가 모빌 보다가 꼬꼬맘 보다가 몇개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전부라, 아기도 내 얼굴만 보다보면 지루한 시간이 오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아기도 짜증을 내고, 나도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온다.
그 때 유모차는 빛을 발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던 우리 아가를 아기띠를 하고 밖에 나가는 건 생각만 해도 무겁기에 50일부터 나는 유모차를 태워서 외출하곤 했다. 완전 눕는 건 아기가 거부하고 아주 살짝 세워서 앉혀주면 아기도 짜증을 부리다가 얌전해지곤 한다.
늘 코스는 같다.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쭉 도는 길.
아기는 열심히 나무도 구경하고 하늘도 구경했다가 잠시 쪽잠에 들었다가 다시 눈을 떠서 이곳 저곳 보곤 한다. 나도 역시나 구경하는 아기를 보며 행복해했다가 주위를 둘러본다. 어제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누가 봐도 내 아기와 비슷한 월령인 아기들을 끌고 나온 엄마들이 수두룩 했다.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소심한 나는 말을 걸지 않고 그냥 나와 비슷한 표정이구나 생각하며 걸었다. 어떤 엄마는 핸드폰을 보면서 유모차를 밀고 있었고 어떤 엄마는 벤치에 유모차를 세워놓고 본인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아빠가 유모차를 끌고 나온 걸 보면서 어쩌면 육아하는 아빠는 엄마들보다 더 외롭겠다라는 생각을 문득 하곤 했다. 동성의 육아동지를 찾는게 더 힘들 것 아닌가.
단지 내에도 여러 길이 있다. 나도 안가본 길까지 구석구석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닌다.
가끔은 어린이집에서 웨건 같은 곳에 아이들을 끌고 나와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기들도 서로서로 더 아가를 보면 신기해하고, 선생님한테 이것 보라고 알려주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인솔하는 와중에 아이들의 사진까지 찍는다. 키즈노트인가 무엇인가 때문에 선생님이 이제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것 같은데 굳이 저렇게 키즈노트가 필요한건가 생각도 한다. 적어도 아이 2명 이상을 선생님 1명당 케어해야 할텐데 사진까지 찍어야 한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한번도 이사를 하면서 대단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유모차를 끌다보면 대단지에 살아야 하는 필요성을 알게 된다. 만약 주변에 공원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예전에 헬리오시티를 가서 '여기 왜이렇게 커?'라고 생각했지만 아이와 산책을 나오면서 단지가 평지에 크면 세상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단지 옆에 백화점까지 있다면 더더욱 좋고. 공원이면 베스트고. 사람이 생각하는게 이렇게 달라지나 보다. 그래도 다행인건 단지 내에 커뮤니티가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 커피를 사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차도를 건너지 않고 커피를 살 수 있다는 것은 나름 좋은 장점이다.
이렇게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아이와 나 모두 리프레시를 한 게 느껴진다.
당장 겨울은 어떡하나. 온난화가 와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지만 오늘은 일단 산책을 통해 우리 둘의 지겨운 시간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