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가 하고 싶은 걸까

by 도로도로

내 주변에 아기를 키우는 사람은 많다. 특히 같은 해에 태어난 아기가 많아 카톡으로 이런저런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문제는 가까이 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기를 데리고 만나지는 못하고 원격으로 수다를 떨곤 한다.


가끔 공동육아를 해서 살 것 같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아파트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도 만나서 공동육아를 해야 하나. 단지에서 말 걸어서 육아 동지를 사귀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래볼까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러나 진짜 말을 걸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주저하게 된다.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나는 정말 공동육아를 원하는가. 육아 동지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사귀고 싶은가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 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업무의 특성상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름 E에 더 가깝던 나는 일을 하면서 완전히 I의 성향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오면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를 통해 요가를 하면서 재미를 붙였지만 요가원을 가지 않은 이유는 정해진 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싫었기 때문이다. 러닝을 계속했던 이유는 시간과 사람에 구애받지 않고 나 혼자 실컷 할 수 있는 운동이어서였다.


그러나 일을 휴직하고 집에서 육아를 시작하다 보니 I에 가까웠던 성향은 다시 E로 스멀스멀 옮겨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카톡으로라도 수다를 떨지 않으면 답답했고,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오면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물론 이건 I와 E의 문제가 아니라 또래와의 대화가 필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편이라도 재택 하면 재택 하다가 나오는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면서 충전이 되었지만 남편이 연속으로 출근하는 날은 정말 AI랑이라도 떠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기를 데리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육아동지를 아파트 내에서 사귀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운전도 못하는 내가 아기를 데리고 멀리 갈 수는 없고 깨시가 길어질 아기를 데리고 행복하게 놀기 위해서는 육아 동지를 사귀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을 만나며 생길 스트레스를 육아 휴직을 하면서까지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사람마다 만나고 싶은 횟수가 다르고 연락을 하고 싶은 횟수가 다른데 가까운 곳에 육아 동지가 있다면 만나자고 하는 것이 귀찮아지고 하면 서로 또 스트레스를 받고 이럴 것 같은 마음에 선뜻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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