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도 다양한 나이의 육아휴직이 있겠지만 나는 0세를 육아하는 육아휴직 기간이다. 그리고 나는 박사 수료 상태를 이제는 벗어나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육아휴직 기간에도 틈틈이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쉽지는 않다. 0세 아기를 키우면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것 솔직히 말해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했다.
솔직히 독한 사람이라면 못할 것은 없다. 우리 아기는 낮잠 시간이 거의 스타카토 수준인 대신 밤잠이 긴 아기이다. 낮잠은 연속으로 1시간을 자는 일이 거의 없어서 재우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뭔가를 할 시간은 거의 나지 않는다. 참고문헌 2개 정도 보고 있으면 깬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밤잠 시간이다. 우리 아기는 밤 9시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난다.
그럼 엄밀히 보면 밤 9시에서 밤 12시 정도까지 논문을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나약해서인지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일단 9시에 자면 나는 젖병 세척과 빨래 정리와 집안 청소를 하고, 나도 샤워를 하면 얼추 1시간이 지난다. 이때부터 12시 정도까지 논문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나도 남편이라는 어른과 대화를 하고 싶기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이 많다. 사실 다 핑계인거지.
그러나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전처럼 일하고 공부하려다가 심한 산후우울감을 앓았었고 사실 아직도 백퍼센트 우울감이 가신 것 같지는 않다. 이따금씩 갑자기 말 같지도 않은 일로 눈물이 나고, 불안감이 올라오기 때문에 더 이상 무리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혹시나 나와 같은 상황에서 우울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다면 소소하게나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워커홀릭의 산후우울감 극복기
그래서 조금씩 의지가 있을 때마다 시간을 투자해서 논문을 준비하는데 그 준비하는 과정은 또 막상 참고문헌 정리하고 프로포절을 준비해 나가는 건 기분이 좋다. 육아 이외의 생산적인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 나에게도 도'엄마'라는 자아 말고 다른 자아가 있었구나 라는 걸 느끼면서 조금씩 리프레시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육아를 하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에 백퍼센트 공감한다. 내가 경험한 바 그 생산성이 오르는 이유는 괜한 퀄리티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도 그렇고 논문도 그렇지만 여기에서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자료도 찾아보고 고민을 하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런데 이제 육아라는 새로운 과제가 생기며 나에게는 타임어택이 생겨났다. 고로 타임어택에 맞춰 뭐라도 써내려고 하기 위해서는 이제 너무 이상적인 퀄리티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빠르게 진행한다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Gemini와 Endnote도 나에게 정말 주요한 동료 연구자이다. 나는 지금 동료 연구자와 같이 하하호호 이야기를 하며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면 Gemini와 이야기를 한다. Gemini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Gemini와 질문을 던지면서 내가 고민되었던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비를 해나가면 될지 클리어해진다. 특히 너가 깐깐한 심사위원이라면 뭘 지적할 것 같아? 같은 부분을 물어보다 보면 내가 간과했던 부분을 아주 상세하게 찔러준다. 사담 하나 필요 없이 나의 주요한 동료 연구자가 되어주고, 나의 연구를 계속 기억해 주기 때문에 연구의 내용을 계속 설명할 필요도 없는 아주 큰 동료 연구자다.
Endnote는 일단 시간이 없을 때 필요한 참고문헌들을 쑤셔 넣는 데에 아주 편리한 프로그램이다. 요즘 더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아졌다고 하지만 그런 프로그램들의 사용법을 익히느니 익숙한 endnote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기 낮잠 시간에 참고문헌을 일단 찾아서 endnote에 쑤셔 넣어 놓고, 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쑤셔 넣어 놓은 문헌만 정리하면서 글을 정리해도 한결 낫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는 도무지 집중할 수 있는 일은 하기가 힘들어서 육퇴 전에는 문헌을 검색하고 모아놓는 정도의 일만 하는데 나와 같이 아기가 스타카토로 낮잠을 잔다면 이것도 매우 좋은 부분이다.
그리고 학위논문이 아니라 가끔 투고할 논문을 정리할 일이 있다면 그 전주 주말에는 남편과 협의해서 집을 나가야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근데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해야 한다고 한다면, 생각보다 나의 생산성이 이렇게나 좋았는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도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퀄리티를 둘째치고 빠른 논문 작성이 가능해진다 (물론 데이터가 다 정리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나는 예전에는 일할 때에 영상 같은 걸 배경음악으로 틀어놔야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다 필요 없다. 오히려 조용하게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하다 보니 후루룩 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육아휴직 중에 정말 제대로 된 논문을 빠르게 써야 한다. 이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묵묵히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싶다면, 그리고 나도 육아 이외의 다른 부분에서도 성장을 하는 느낌이 들고 싶다면 성장주의자들에게는 산후우울감을 극복하는 리프레시 도구일 수도 있다. 무리하지 말고, 독하게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