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라도 켜야지

by 도로도로

남편은 사무실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다른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환경에서 육아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후에 출근하기도 하고 재택을 하기도 하니까 일을 하느라 아이를 직접 봐주진 못해도 남편과 말을 하면서 점심을 먹는 경우도 있고 급할 땐 잠시 남편이 봐주시고 하니까. 찰나라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건 너무 다르다.


사실 임신 중에는 남편에게 웬만하면 사무실 출근을 하라고 했다. 재택을 하면서 육아에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으면 그것대로 서운해 싸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사람이 이렇게나 사회적 동물인지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차라리 일하는 소리라도 듣는 게 심적으로 편안하다.


그러나 이번 주는 남편이 계속 회식 혹은 저녁 미팅이 있었다. 그리고 오전 출근 건이 있었고. 12월이 되면 부쩍 많아지는 게 회식이라 그런 것에 터치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직장에 다닐 땐 회식 많이 했으니 할 말도 없었고. 남편은 미안해하며 다음 주 주말엔 정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했고 나는 회사일이니 신경쓰지 말고 다녀오라고 쿨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적막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기와 놀아주는 건 나 혼자 열심히 말하며 아이의 가끔 하는 옹알이에 대답하고 노래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는 것뿐이다. 그 중간중간 집의 적막은 나를 우울로 이끌었다. 특히 또 투고한 논문이 수정 후 재심이 뜨자 그럴 거 같았음에도 우울이 더 몰려왔다. 남편이 출근하자 눈물이 주룩 나왔고 우울하게 아이와 놀아주느니 차라리 그냥 티비라도 틀어놓자라는 결론이 나왔다.


너무 잘 안다. 미디어를 어릴 때 접하면 좋지 않다는 걸. 그러나 변명을 하자면 우울이 더 심화되는 걸 막고 싶었달까. 변명이겠지.


그래도 TV를 틀어놓으니 집이 적막하지 않고 우울에 빠져 있지 않을 수 있어서 TV를 틀어놓고 더 아이와 열심히 놀아줄 수가 있었다. 아이는 오히려 별로 TV에 관심이 없었는데 괜한 나의 자책감으로 더 열심히 오버를 하며 놀아주었다. TV는 일종의 BGM처럼 틀어놓고 너무 힘들 때 잠깐 봤다가 다시 놀아주고의 반복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도 TV를 아이 앞에서 안 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가 바로 미디어 중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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