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맘의 양가감정과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성격이 쿨하니까 애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키울 것이라고 하였다. 교육학 전공자라는 타이틀이 한 몫하기도 했고 무던하고 쿨했던 과거의 내 성격이 한 몫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SNS에 휘둘리지 않고, 주변 조언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중심을 잡고 행복한 육아를 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분명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행복의 세계가 열렸지만,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내가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혼란 속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벅차오르는 행복감 뒤에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따라오기도 했고,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내가 쌓아온 커리어와 나의 능력에 대한 후회를 하기도 했다. 쿨한 엄마는커녕, 유난스럽고 서툰 초산맘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정체를 오은애(2014)의 연구, 12개월 미만 첫 자녀를 둔 어머니의 양육 경험에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논문은 초산 엄마가 아이를 보물로 여기며 남편과 아이와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 역시 그랬다. 워커홀릭으로 살던 내가, 내 커리어를 멈추고 가정을 서포트하는 이 시간을 '손해'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조차 놀라웠다. 내가 책을 읽어주면 까르르 웃는 아이의 표정, 남편과 아이가 함께 하는 거실의 풍경. 우울감이 오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가 하나의 '가족'이 되었구나라는 끈끈함은 결혼 직후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안정감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하다고, 논문 연구 참여자는 모든 시간, 시야 속에 자녀를 두며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호소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뒤집기를 시작한 아이가 끙끙대면 손빨래를 하다가도 달려가고, 모든 것을 입에 넣는 아이를 위해 바닥에 떨어진 이물질 하나도 치우고 아이가 무슨 일이 있을까 고민하는 나는 24시간 아이를 늘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뭔가 시간을 투자해서 할 나의 일은 하기가 어려워지고 성인으로서 나의 사회적 관계는 축소되고, 사회적 생활을 하고 온 남편과의 대화에도 심통이 나는 날이 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나라는 사람의 세계가 좁아지는 느낌은 나라는 사람을 작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고, 나를 이렇게 좋아하고 의지하는 아이를 보면 직업관마저 바뀌게 된다. 논문의 연구참여자는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로 하는 시기임을 알지만 자신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일을 시작하지만, 그 일은 복직이 아니라 보육시설에 맡기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른 직무를 찾아 나선다. 나 또한 그렇다. 과거의 나에게 좋은 회사의 1순위는 '나의 성장'이었고 일이 많더라도 관계없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이직에서 연봉이 아이를 위해 줄 수 있는 것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이제 나에게 1순위는 시간의 자율성과 재택근무의 가능 여부가 될 것이다.
나의 가치관이 모두 흔들리고 행복과 우울을 모두 겪는 낯선 혼란 속에서 표류 중이지만,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쿨한 엄마는 되지 못해도 혼란 속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자 한다.
*오늘의 참고 논문: 오은애. (2014). 12개월 미만 첫 자녀를 둔 어머니의 양육 경험. 한국유아교육연구, 16(2), 1–24. https://doi.org/10.15409/riece.2014.16.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