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천국이라는 환상과 현실의 괴리

나는 조리원에서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by 도로도로

다들 조리원은 마지막 휴식처라고 했다. 조리원에서 갑갑하겠지만 2주간 육아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나중에 나와서 알 거라고. 무조건 조리원에서 즐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집순이로서 방 안에 있는 건 크게 힘들지 않을 거 같았고 사실 조리원 천국이라는 환상은 없었지만 조리원에서 뒹굴뒹굴 TV나 보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부터 시작된 극심한 산후우울은 조리원까지 이어졌다. 조리원에서 울지 않은 날이 없었고 그냥 집에서 쉬다가 모자동실 시간에만 올까도 많이 생각했다. 시설에 욕심이 없었던 나는 내가 싫은 점을 제외하고 가장 가성비 넘치는 조리원을 골랐다. 빡빡한 창틀과 스티커가 붙은 창문을 보면서 나는 너무 힘들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조리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혹시나 만약에 둘째를 갖게 된다면 조리원을 가는 것이 맞을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송주은 외(2015)의 논문은 비록 10년 전이라도 산후조리원의 모습은 똑같았구나 하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를 어렴풋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초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범주화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중 범주 3이 모유수유의 어려움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도움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모유수유를 하고 그다음에는 잔다고 했기에 그 이후는 유축만 했다. 그래서 논문에 나온 모유수유로 인한 피로함은 없었다. 그러나 자세를 잡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이 논문에서 나온 아래 구절에 나는 너무나 공감이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옆에 있으면서 봐주시는 게 아니라 쪼금 봐주시고 쪼금 봐주시고 이렇게 하시니까 이게 아예 자세가 안잡히는 거에요"


자세가 안 잡히는 게 나한테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안아본 아기를 데리고 자세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혹시나 아이를 제대로 안지 못할까 봐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물론 산후우울감으로 인한 불안감이 나를 이렇게 불안에 싸 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누르라던 벨은 아이를 안고 도저히 누를 수 없도록 모유수유실 중앙에 있었다. 모유쿠션을 들고 도대체 어떻게 저기 벨까지 가야 하는가. 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잘하는 걸까. 저분한테 눌러달라고 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지나치고 나서 나는 모유수유를 하기가 너무나 두려운 감정까지 들었다.


왜 그분들은 잘했을까? 이 조리원은 유명한 경산모에게 좋은 첫째와 남편이 자유자재로 들어올 수 있는 조리원이었기 때문이다. 채현주(2018)의 논문을 보면 초산모는 산후조리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충분한 휴식(52.8%)과 육아 관련 지식 습득(41.5%)으로 나뉘지만, 경산모는 산후조리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81.1%가 충분한 휴식을 꼽고 육아 관련 지식 습득은 13.2% 뿐이다. 이미 해봤기 때문에 물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있지만 초산모보다 간절하지는 않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서는 모유수유에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가는 앞으로 완모, 완분에 중요한 것만이 아니라 초기 나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너무나 중요하다. 사실 분유를 주는 것도 어떤 자세로 주어야 하는지 나는 산후관리사님에게 제대로 배운 것 같다.


송주은 외(2015)의 논문을 보면 초산모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받은 마사지나 조리원 동기들과의 상호지지를 통해 조리원에서 힐링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마사지로서 부기가 빠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마사지에 돈을 쓰지 않았었는데 사실 돈을 좀 써볼까도 생각했었다. 1회씩 추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이 몇백 단위로 추가비를 내야 하는 것이 너무 뭔가 아까워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조리원에서 시간이 무진장 많이 남았었는데 조리원에서 딱히 동기들과 교류를 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 이후 조리원 동기들과 '조동'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조리원이 많지 않고 더군다나 내가 있었던 조리원은 대부분이 첫째와 방에서 함께 하고 있었기에 딱히 내가 사귈 수 있었던 조동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우울했을 때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더 일찍 산후우울감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초산모와 경산모는 분명 상황이 다르고, 조리원의 기준도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초산모에게 유명한 조리원, 경산모에게 유명한 조리원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고, 그걸 모른 나는 조리원 천국이 아닌 우울 조리원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참고 논문

송주은, 채현주, 박보림. (2015). 포커스 그룹 연구방법을 적용한 초산모의 산후조리원 이용 경험 분석. KJWHN(여성건강간호학회지), 21(3), 184.

채현주. (2018). 산후조리원 이용 초산모와 경산모의 산후조리 만족도 및 육아교육 요구도 비교. 의료경영학연구, 12(4), 1–10. https://doi.org/10.18014/hsmr.2018.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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