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뜨지 않은 겨울밤, 저절로 눈이 떠진 그는 머리맡의 핸드폰을 확인하였다. 여섯 시 10분 전.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에서 깨어버렸다. 어제도 이어진 야근과 회식으로 인해 너무나 피곤했던 그는 화가 치밀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버리는 자신의 노예근성에, 몸 안에 내장되어 버린 자명종 시계에. 그는 남은 10분이라도 잠을 더 자기 위해 이불을 얼굴까지 덮었다.
‘이제 600초, 아니 594초, 아니 593초 남았네. 잘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어떻게든 잠들어야 해.’
하지만 잠에 들려 노력할수록 그의 정신은 또렷해졌다. 그는 간절히 빌었다.
‘신이시여, 제발 잠에 들게 해 주세요. 단 한 번만이라도 깊은 잠으로 제게 찌든 피곤을 벗겨내주세요. 단 하루만 알람이 제 단잠을 빼앗아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53초. 알람이 울리기까지 1분도 남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또렷한 정신으로 이불속에 누워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알람이 울릴 것을 알았기에 그는 더욱 초조해졌고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33초, 20초, 12초, 7초, 4초, 2초, 1초.
울려야 할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핸드폰 시계에는 분명히 6:00이라는 숫자가 떠있었다. 그는 당황했지만 차분히 1분을 더 기다렸다. 6:01. 여전히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시계 앱에 들어가 보았지만 이상은 없었다. 그가 알람을 끈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이불을 떨치고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그때 한 목소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왜 화가 났느냐?”
“네? 누구시죠?”
“나는 너의 신이다. 내가 너는 왜 화가 났느냐고 물었다.”
“신이시라고요? 신은 굵은 남자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너의 편견일 뿐이다.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며 젊지도, 늙지도 않다. 심지어 얇거나 굵지도 않지. 너희 인간의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다.”
“죄송합니다, 신이시여.”
“괜찮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그런데 너는 여전히 내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있구나. 너는 왜 화가 난 것이냐?”
“제가 화가 난 이유는 이놈의 핸드폰 알람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지 1년도 안된 핸드폰인데 고장이 난 건지…….”
“그 알람은 내가 울리지 않게 한 것이니라.”
“네? 아니, 대체 왜?”
“네가 간절히 빌지 않았느냐? 단 한 번만이라도 알람이 너의 단잠을 빼앗아가지지 않게 해 달라고.”
“아니, 정말이십니까? 그럼 제가 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을 핸드폰 알람을 울리지 않게 하는데 썼다는 말씀인 건가요? 무슨 기적이 이런 식입니까? 당신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신이 맞는 건가요? 애초에 신이 핸드폰을 알고 있다는 것부터 의심이 갑니다.”
“어허, 넌 나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구나. 너는 내가 임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더냐? 너는 요즘 사람이니 유비쿼터스라고 해야 알아듣겠느냐? 임재라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간의 개념도 포함하는 것이니라.
당연히 농부의 거친 손뿐만 아니라 최신형 핸드폰 속에도 내가 있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지 않게 하는 것은 고작 1 하나를 0으로 바꾸는 것뿐인데 전능한 나에게 무슨 어려움이 되겠느냐? 내가 하고자 한다면 네가 하는 게임 속 가장 귀한 확률 아이템도 네게 줄 수 있다. 고작 0 몇 개를 1로 바꾸는 일일 뿐인데, 너는 나의 권능을 의심하는 것이냐?”
“제가 실례를 했다면 죄송합니다. 제발 저를 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다만 당신이 제가 알던 분과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운 것뿐입니다.”
“걱정 마라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를 벌하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네게 단잠을 선물하러 왔다. 그런데 너는 내가 알람을 꺼주었음에도 단잠을 얻지 못했고, 행복해 보이기는커녕 아주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구나.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너는 왜 화가 난 것이냐?”
“흠, 제가 화가 난 이유는 핸드폰이 약속을 어기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핸드폰은 기계입니다. 기계는 실수하면 안 되죠.
물론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알람이 안 울릴 수는 있지만 저는 분명히 충전선을 꼽아두었고 보시다시피 배터리도 100%입니다. 저는 분명히 핸드폰에게 6시 정각에 알람을 울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핸드폰은 인간이 만든 기계인데 인간인 저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죠. 이건 배신입니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느냐? 핸드폰이 너를 배신했기에 화가 난 것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내가 인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했는지 알고 있느냐?”
“네? 잠시만요……, 그 말은 당신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저는 신의 존재는 믿지만 인간은 진화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핸드폰은 인간이 만든 것이 맞느냐? 나는 아이폰 27세대는 아이폰 26세대에서 새롭게 진화한 아이폰이라고 말하는 광고를 들었다. 어차피 핸드폰도 사람이 아닌 기계가 조립하지 않느냐?”
“아니, 그 광고는 그 말이 아니오라……”
“너는 논점을 흐리고 있다.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너는 내가 인간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했는지 알고 있느냐?”
“네, 압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너는 내 지시에 따라 살고 있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들어라. 네 핸드폰은 오늘 이전까지 수많은 날들을 너의 지시를 어기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알람을 울렸다. 네가 내 지시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산 날은 핸드폰이 제시간에 알람을 울린 날에 미치지 못한다.”
“죄송합니다. 이 비천한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걱정 마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미 용서받았다. 나는 오늘 너에게 씨앗을 심기 위해 온 것이지 너를 벌하러 온 것이 아니니라. 이제 씨앗이 심겨졌으니 너는 가서 싹을 틔우도록 하여라.”
“네, 감사합니다.”
5:56. 꿈에서 깬 그가 바라본 핸드폰 화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는 꿈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뭔가 짜증 나면서도 중요한 느낌이 드는 꿈이었는데. 하지만 곧 알람이 울린다는 사실은 꿈을 기억해 내려 애쓰는 그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는 240초, 아니 이제 236초 뒤면 알람이 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잠시라도 단잠을 자기 위해 눈을 세게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