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연필이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30대가 되어 더이상 샤프를 사용하지 않게 된 후였다. 빨간 지우개가 달린 노란색 육각 연필은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는 식탁에 앉아 연필과 A4용지를 꺼내 그날의 할일을 적어 나갔다. 흰 빨래 돌리기부터 가스요금 납부, 15분 스트레칭, 부모님께 전화,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생수 주문하기까지. 직장의 일은 일부러 연필로 그 종이에 적지 않았다. 연필로 적는 일들은 진정 그를 위한 일들, 그의 삶의 골수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직장에서의 그는 키보드였지 연필이 아니었다.
그가 종이에 연필로 적은 일들을 매일 완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종이에 흑연색으로 써내려간 목록들을 읽다보면 그가 누구인지 정의된다고 느꼈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했다. 가끔 자아의 실현이나 꾸준한 성장을 위한 행동도 있었지만 그는 그에게 할당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하는데 썼다.
어찌보면 직장에 나가는 것도 살아가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직장이 계속 반복해 말하는 것, '개인의 성장과 함께하는 조직의 발전' 혹은 'Explore your future in XXX'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직장생활은 생수와 가스를 살 돈을 벌고 편의점 삼각김밥이 아닌 분식집 김밥을 먹으려면 필요한, 살아가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사자가 어떻게하면 더 빠르게, 더 멋있게, 더 화려하게 사냥할지 고민하지 않고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덜 쓰며 자신에게 필요한 양을 채우기 위해 무덤덤히 사냥하듯이. 그게 그의 직장에 대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기 위해 나간다고 믿고 있는 직장은 점점 그에게 복잡한 것들을 요구했다. 그는 애초에 승진을 해서 팀장이든 파트장이든 되길 원하지 않았는데 회사는 승진하지 않아면 잘릴지도 모른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올해 인사철이 끝났을 때 팀장은 그를 회의실에 않혀두고 자신이 힘이 없어 그의 승진이 밀렸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는 팀장의 말이 진심인지 팀장 업무의 일부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회의실 테이블 귀퉁이의 까진 부분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빨리 보고서를 쓰고 보고하고 욕을 먹고 수정하고 발표하는 자신의 업무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는 다시 노란색 연필을 들고 노트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그는 넷플릭스도 야구도 보지 않게 되었다. 남의 삶을 지켜보는게, 남의 이야기를 지켜보는데 질렸달까. 의식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TV, SNS, 게임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자신과 관련도 없는 이야기들에 흥미를 잃었을 뿐이었다. 대신 그는 연필을 잡고 아무 이야기나 써내려갔다. 어린시절의 하루를 다시 일기로 써내려가기도 했고 새로 생긴 김밥집에서 사온, 참기름 향이 강한 참치김밥을 먹으며 그 맛에 대해서도 썼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팀장의 낮은 목소리와 회의실 테이블 귀퉁이의 까슬한 촉감에 대해서도 썼다.
연필은 사각거리다 뭉툭해지면 소리가 줄어들었고 그럴때면 그는 연필을 깎고 쓰고, 깎고 썼다. 그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그의 삶에서 무언가를 캐내기 위해 애썼다. 재미는 없어도 좋았다. 그의 삶이라는 검정색 돌을 잘게 부수고 왕수에 녹여서 아주 작은 조각의 순수한 금속이라도 마주할 수 있다면, 진정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수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연필은 그의 좋은 친구였다. 연필을 세는 단위가 12개의 묶음인 다스라는 것도 좋았고 어딜 가나 노란색 몸통에 빨간 지우개가 달린 육각 연필을 구하기 쉽다는 것도 좋았고 흑연과 나무로 만들어져 쓰다보면 사라진다는 사실도 좋았다. 그는 더이상 사용할 수 없을만큼 짧아진 연필들을 한 상자에 모아두었다. 상자에 연필이 하나씩 쌓여갈때면 그는 그의 생이 조금식 타면서 줄어들고 있다고 물리적으로 느꼈다. 이 삶도 끝이 있겠구나, 나의 부분부분이 조금씩 늙어가고 있구나, 내 세포속의 텔로미어들이 점점 사라져 짧아지고 있구나, 언젠간 결국 다 끝나겠구나. 조급함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죽지 않고 영원히 남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은 모두에게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어느 날, 그는 들고있던 연필로 자신의 손등에 글씨를 써 보았다. 잘 써지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에 연필 자국이 흐릿하게 남았고 강하게 눌린 부분은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는 빨간 자국을 바라보다가 조금 더 강한 힘으로 그의 이름을 연필로 손등에 썼다. 그의 이름이 빨간 자국으로 손등에 새겨졌다. 그가 진정 이 이름의 주인이라면 그의 몸 어딘가에는 그 이름이 적혀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글씨가 아니면 어떤 상징이라도. 하지만 빨간 자국은 그의 몸에 어울리지 않는 상처였을 뿐 그의 일부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누굴까. 다섯번째로 손등에 이름을 썼을 때 결국 피부 한쪽이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피를 보며 많이 울었다. 아무리 걷어내고 걷어내어도, 부수고, 녹이고, 상처를 내어도 감춰지고 감춰진 그의 속으로 다가가는 일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연필로 써내려간 노트 속 글들은 마찰에 뭉개져 흐릿해졌고 미처 완수하지 못한 A4용지속의 할일들은 해도 해도 끝없는 살아가기 위한 일들 뿐이었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 살아갈 뿐이었다. 그의 삶은 온갖 거짓들로 조작되어 있었고 참기름 향으로 뒤범벅 되어있었고 낮게 자책하는 목소리로 덮여 있었다. 그는 그저 먹고, 화장실에 가고, 듣고, 웃으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의 삶은 시가 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조명을 껐다. 어둠속에서 피가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촉감과 욱신거리는 아픔을 느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런 조잡한 출혈로 죽을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상에 놓여있는 연필로 상처를 더 후벼 파지 않는 자신을 비웃으면서. 점점 흐릿해져가는 아픔이 선명해지길 바라는 대신에, 이제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 이 남자의 뜨거운 피가 식어 차갑게 굳어 버리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