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 밖에 춥지?”
“어휴, 서울은 많이 춥네요.”
크리스마스를 맞아 부모님 댁에 온 가족이 모였다. 부모님과 여동생네, 우리 가족. 미국에 있는 형 가족은 올해도 함께하지 않았다.
나의 첫째와 여동생네 외동딸은 오랜만에 만난 동갑내기 사촌이 반가운지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둘째도 언니들 틈에 끼고 싶은 눈치인지 어색하게 주위를 맴돌았다. 조카아이가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보여준다며 첫째 손을 잡고 거실로 끌고 갔다.
식탁에서는 어른들이 여동생이 사 온듯한 쿠키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어머니께 드리며 이따가 저녁때 마시자고 말씀드렸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도 등장하고 간호사 선생님도 등장하고 말 안 듣는 아이도 등장하는 놀이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며 바쁘게 인형을 잡은 손들을 움직였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그 세대에 흔하지 않은 외동이셨다. 그래서 외로웠다고, 너희들은 그렇지 않길 바란다며 아이를 셋이나 나으셨다. 사실 더 나으려고 하셨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네 번째 제왕절개는 너무 위험하다며 극구 만류했기에 셋에서 끝난 터였다.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셋이 함께였다. 명절에도 만날 사촌들이 없었기에 언제나 셋이 놀았다.
형과 동생은 성향이 비슷했다. 둘 다 책을 좋아했고, 똑똑했고, 차가웠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아는 애어른 같은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둘과 달랐다. 사람들과 말하기를 좋아했고, 칭얼댔으며, 입에는 항상 먹었던 음식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안타까워하며 더 많이 챙겨주셨지만 기본적으로 어머니도 형과 동생처럼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시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일을 하셨던지라 아이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살피며 세세하게 대응해 줄 에너지가 없으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어울려서 지냈는데, 형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우리 사이는 급격히 벌어졌다. 형은 내가 말귀를 못 알아먹는 데다가 시끄럽다며 저리 가라고 했고 동생도 큰오빠를 따라 하는 건지 혼자 책을 읽거나 인형놀이를 했다. 같이 숨바꼭질을 하자고 하거나 한껏 양보해 같이 인형놀이를 하자고 해도 작은 오빠랑 놀면 재미없다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공부가 더 중요해지자 우리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형과 동생 모두 전교권에서 노는 우등생이었던 반면에 나는 반에서 10등도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40명이 넘는 반에서 10등에 든다는 건 꽤 잘하는 축에 속했지만 ‘형’의 동생이었기에 나는 학교 친구들도 아는 열등아였다.
게다가 둘은 왜 외모도 나와 왜 그렇게 다른지. 둘은 아빠를 많이 닮아서 키가 크고 얼굴도 하얬다. 나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걸 본 친구 중에는 여동생을 소개해달라고 하는 애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여드름 투성이인 나를 보며 형과 동생이 좋은 유전자를 다 가져가서 내가 이모양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축구를 잘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항상 반 대표에 뽑히는 것은 당연했고 학교 대표로까지 뽑힌 적도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수백 명의 아이들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축구는 형도, 여동생도 잘하지 못하는 나만 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도 친구들과 30분씩은 축구를 하다 집에 갔다. 땀범벅이 되어 집에 온 나를 보면 형은 혀를 찼고 동생은 눈을 내리깔고 냄새난다는 듯이 방문을 닫았다. 엄마만이 나를 반겨주었지만 그건 왠지 아픈 사람을 케어해 주는 느낌이었다.
가족 모두가 왜 우리 집안에 저런 애가 태어났을까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주말이면 늦잠을 자는 나를, 지하상가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유행하는 옷들을 사 오는 나를, 걸핏하면 형한테 대들고 가족들에게 서운하다고 말하는 나를 안타깝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점점 집에서 입을 닫게 되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애들이 많이 커서 신기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동생을 바라보았다. 애엄마라고 보이지 않는 앳된 외모에 굵은 웨이브가 들어간 잘 세팅된 머리.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가끔 연락도 하고 예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졌지만 동생은 여전히 나와 많이 달랐다. 동생의 윤기 나는 머리와 잔머리가 튀어나온 아내의 쇼트커트를 번갈아보며 나는 말없이 동생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아이들의 인형놀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영어를 섞어가며 진행되고 있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조카아이와 영어학원을 좋아하는 첫째는 영어가 재미있는 듯했다. 영어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의 둘째는 말 안 듣는 아이에서 말 못 하는 아이가 돼버린 건지 괜스레 인형의 머리칼만 잡아당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