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어느 가족식사 이야기 (2/3)

by 조이현

2.


“역시 우리 매형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분은 없다니깐. 그나저나 어머님, 요즘 주식 계좌 확인해 보셨어요? 전에 제가 알려드린 주식 많이 올랐는데.”

“어휴, 김서방 당연하지. 이러다 수익률이 100%도 넘겠어. 우리 김서방이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하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증권사 다니는 친한 친구한테 듣고 말씀드린 건데, 이 친구가 허튼소리는 잘 안 하더라고요. 다음에 또 좋은 기회 오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그래. 아니, 나한테만 말해주지 말고 너희 매형한테도 좀 말해줘라.”

“아휴 어머니, 저희가 투자할 돈이 어디 있어요. 먹고살기 바쁘지.”


아내가 서둘러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신혼시절, 우리에게도 적지만 투자하던 돈이 있었다. 적금으로 모아 온 돈이었는데 친한 친구 녀석이 적극 추천한 장외주식에 투자했다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내 친구 중에서는 가장 똑똑하고 성실한 녀석이었는데. 다행히 나를 속인 것은 아니고 그 친구도 진심으로 상장될 것이라 믿었던 터라 나와 함께 돈을 날려버렸다.


돈을 날린 사실을 밝혔을 때, 크게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내는 잠시 침묵하더니 수업료 낸 셈이라 치자고 했다. 아직 젊으니깐 이제부터 갚아 나가면 된다며 툭툭 털어내었다. 그런 아내가 더 무서워서 미안하다고, 내가 평생 갚으며 살겠다고 사죄했다. 아내는 내 사죄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아내에게 갚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벌 수도 없었고 원래 씀씀이가 크지 않았기에 지출을 더 줄이기도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내의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외식 메뉴의 결정권을 아내에게 주었고, 아내가 원하던 때에 아이들을 가졌다.


그렇게 1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잘못된 투자로 생겼던 빚은 모두 청산하였다. 하지만 내가 아내에게 갚는다고 한 빚은 얼마쯤 갚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10년간 아내의 말을 들어주며 살다 보니 이젠 무슨 옷을 입을지도 아내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바보가 되었지만 아직 빚 청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더 나를 줄여야 이 빚은 다 갚아지는 걸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투자 이야기만 나오면 화제를 돌리는 아내가 아직도 속으로는 나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도, 알려줘라 김서방. 알았지? 막내야, 가서 아버지 좀 모셔와라. 진지 잡숫게.”

동생이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진지 드시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누가 오든 말든 책에 파묻혀 계셨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시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그동안 식탁을 행주로 닦고 수저를 놓고 어머니가 준비하신 반찬들을 꺼내고 동생이 만들어온 바비큐 폭립을 오븐에서 꺼냈다. 처남이 사 온 와인과 내가 사 온 막걸리까지 식탁에 놓인 후에야 아버지는 거실로 나오셨다.


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시자 어머니는 기도를 시작하셨다.

“하느님, 이렇게 아기 예수님 오시는 날에 저희 온 가족이 모이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느님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오지 못한 우리 맏이네 가족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먼 곳에서라도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아버지께서는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뜨셨고 처남과 아이들의 '감사히 먹겠습니다' 인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밥도 먹기 전에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니, 엄마는 아직도 형 타령이에요? 형이 5년도 넘게 안 오고 있는데 무슨 형을 위한 기도. 가족이 귀찮아서 안 오는 거란 거 엄마도 알잖아요. 아빠랑 싸우기 싫어서.”

“너 형한테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 너네 형이 사정이 있어서 못 오는 거지. 연말에는 일이 너무 바쁘다더라. 어제 길게 통화했어. 아버지랑도 통화하고. 내년엔 애들 데리고 꼭 오겠다고 하더라.”

“바쁘긴 무슨. 서양애들은 크리스마스면 다 논다던데, 그걸 믿어요? 그러고 연말에 바쁘면 연말 아닐 때라도 오던가. 지 잘난 줄만 알지 가족 소중한 건 몰라요 그 인간은.”

“그만. 애들도 있고, 밥 먹는데. 그만해라.”


옆자리에 앉은 아내가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려 지그시 눌렀다. 나는 밥을 한 숟가락 떠 입에 집어넣은 후에 뜨거운 바비큐 폭립을 손으로 잡고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


옆자리의 동생은 폭립을 집게로 가져오더니 포크와 나이프로 요리조리 돌려가며 고기만 싹싹 발라내어 조카의 그릇에 놓아주고 있었다. 깨끗이 발라낸 뼈는 다시 집게로 집더니 우아하게 뼈그릇에 내려놓았다. 내 말에 동요하는 눈빛이라고는 없었다. 아니 듣기는 한 걸까.


10년도 더 전에, 아직 미혼이었던 나와 동생이 공항으로 형의 마중을 간 적이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을 진행 중이던 형이 결혼 후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길이었다. 형수는 바빠서 함께 올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때도 딱 이때,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동생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동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빠는 그렇게 돈을 쓰고도 돈이 모자란가. 엄마가 오라니깐 크리스마스에 언니 혼자 두고 들어오게.”

“그래? 형 학교에서 강사 하면서 돈 잘 번다고 하지 않았나?”

동생은 대답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곁눈질로 날 쳐다보았다. 그 뒤로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형이 자동문 뒤에서 나왔을 때 동생은 오빠라고 소리치며 격렬히 손을 흔들었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더니 형의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형은 웬일인지 동생을 두 손으로 껴안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껴안고 있는 두 사람 옆에 섰다.


“잘 지냈어? 더 예뻐졌네.”

“응 오빠. 오빠도 얼굴 좋네, 언니가 잘해주나 봐.”

“그래? 몸무게가 좀 늘긴 했는데. 나 너무 아저씨 아니지? 하하하. 어, 너도 왔냐?”


둘은 살갑게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어느새 내 손에 쥐어진 형의 캐리어를 끌며 둘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타서도 둘의 대화는 이어졌다.


“보이프랜드는 잘 지내? 변호사 일은 할만하대?”

“힘들다고 하긴 하는데, 재밌대. 원래 지는 거 싫어하거든. 어떻게든 이기려고 밤을 새워가면서 어그레시브하게 하더라.”

“그래, 그래야지. 컴피티션에서 이기려면 어그레시브 해질 수밖에 없어. 그래야 마켓에서 먹히지.”


동생의 남자친구가 변호사란 것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던 동생이기에 지금도 누군가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형은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부탁한 타이 사 왔어. 내가 너한테 주는 선물이니깐 보이프랜드한테는 네가 산 걸로 해.”

“진짜? 땡큐, 오빠.”


한참 동안이나 둘만의 대화가 이어졌다. 동생은 남자친구에 대해 조잘대더니 형수의 안부를 물었고 형도 형수와의 자잘한 일상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듣다 듣다 결국 말하고 말았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나도 여기 있어.”

“갑자기 왜 그래? 알아 너 있는 거. 아까 인사했잖아?”

“그리고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 세 달 뒤에 결혼하고. 내 여자친구는 좋은 사람이야. 우리 가족이 될 사람이라고.”

“그래 알아, 축하한다야.”

“뭐?”

“그만해. 오빠가 오랜만에 미국에서 왔는데 꼭 시비를 걸어야겠어? 결혼하기 전에 선물하라고 오빠가 여자친구 선물도 사 왔을걸? 안 그래 오빠?

“사 왔지. 처음에 갔던 매장에 없어서, 차를 두 시간이나 몰고 가서 다른 아웃렛까지 들렀다.”


그렇게 거기서 대화는 끊겼다. 집에 와서 풀어 본 선물은 명품 브랜드의 카드지갑이었다. 당시엔 너무 고맙다며 그 물건을 받아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집어던지지 않고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비싼 물건은 아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내가 아내에게 그 정도 가격 이상의 선물을 해준 적은 없었다.


그날 차에서의 대화를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었다. 차의 덜컹거림, 동생의 샴푸 냄새, 형의 어색한 말투와 떡진 머리, 고속도로 옆으로 흐르던 회색빛 인천의 하늘. 모든 것이 실제처럼 떠오르며 나는 그 순간 속으로 들어갔다. 침묵 속에서 느껴지던, 추운 겨울날 축구를 하고 나면 느껴지던 것과 같은 피맛이 목에서 다시 느껴진다.


미간을 찌푸린 채 입으로 폭립을 뜯고 또 뜯었다. 아이들이 얼마 안 남은 폭립을 두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도, 동생과 어머니가 나를 쏘아보는 눈빛에 아내가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폭립을 뜯고 뼈를 뼈그릇에 던져 넣었다. 아무리 폭립을 목구멍에 밀어 넣어도 목에서 나는 피맛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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