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어느 가족식사 이야기 (3/3)

by 조이현

3.


“그런데 말이다. 요즘 애들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은퇴하려고 한다는데, 진짜냐?”

고개를 숙인채 밥과 어머니가 만들어준 반찬만을 드시던 아버지가 말을 꺼내셨다. 아이들은 벌써 밥을 다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동생이 틀어준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리며 머그컵에 내가 사 온 막걸리를 채우셨다.


“네, 아버님. 요즘엔 그런 사람들 많죠. 빨리 은퇴해서 인생을 즐기려고 말이죠.”

처남이 사람 좋게 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처남을 제외한 다른 모두는 질렸다는 얼굴로 아버지의 시선을 피했다.


“요즘 애들은 진짜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중동에 있을 때는 말이다, 다 어떻게 하면 회사에 도움이 될까 고민하면서 살았어. 무슨 막노동꾼도 아니고 배웠다는 엘리트들이 그따위 정신머리라니. 김서방,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

“아뇨, 아버님. 저는 제 일을 좋아합니다. 저는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제가 쌓은 노하우들을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그래 김서방, 김서방 말이 맞다. 나도 회사 생활 계속했으면 그렇게 했을 거야. 애들 엄마가 아프지만 않았더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갑상선암은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건지. 그때 그만두지만 않았어도.”


아버지는 잘 나가던 건설회사에서 젊은 나이에 부장까지 올랐던, 능력 있는 엘리트였다. 학사장교 출신답게 리더십도 있었고 술도 잘 마시고 호탕했기에 회사에서 인기도 많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부장이던 시절에 어머니가 갑상선암 판정을 받으셨고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셨다.


양가의 조부모님들은 모두 아프셨고 그 아픈 분들을 홀로 모시던 어머니가 쓰러지신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사람을 쓰는 대신 자신이 어머니의 짐을 떠안기로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간호에 더해 어머니가 해오시던 양가 어른들의 케어까지 도맡으셨다. 벌이가 필요했기에 집에 공부방을 열어서 과외를 하며 우리들을 키워내셨다.


잘 뵙지 못하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달리 감정적이셨다. 평소에는 표현을 하지 않으시다가도 밤에 거실에서 홀로 막걸리를 마실 때면 나를 불러 타박하고는 하셨다.


“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중동 사막에는 말이야, 바람에 모래가 실려와서 따갑게 피부를 때려. 낮에는 뜨거워서 신발을 신고도 서있지를 못하는데 밤에는 추워서 숙소 안에서도 발이 시려. 지금 이것도 힘들다고 찡찡대면 네가 그런 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은 마라톤이야. 계속 달리지 않으면 뒤로 처져. 너처럼 뒤에 있는 애는 이 악물고 멈추지 않아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어.”


막걸리 냄새를 맡으며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것은 의외로 괴롭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창 훈계를 늘어놓고 나시면 나에게 과자나 골뱅이 같은 안주를 먹게 해 주셨고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막걸리를 한잔 주시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말하는 마라톤에서 승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둑한 거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는 안주가 좋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3년 동안 우리를 돌보셨다. 어머니는 다행스럽게도 완치판정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치료가 끝나자마자 아버지가 잠시 떠안았던 짐을 다시 가져가셨고 아버지는 우리의 육아와 양가 조부모님 케어에서 벗어나셨다.


아버지는 모아둔 돈으로 학원을 차리셨다. 학원은 그럭저럭 잘 운영되었다. 집에 돈이 부족한 적은 없었고 아버지는 곧잘 삼겹살을 사주시고는 했다. 어렸을 땐 어머니가 완쾌되어서 모든 게 다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후에 아버지에게 마음의 병이 생겼다. 대학생 시절, 오랜만에 집에 찾아가면 부모님 사이의 쌀쌀맞은 공기가 느껴졌다. 아버지는 말없이 방에서 책만 뒤적거리셨고 어머니는 할 것도 없어 보이는 집안일을 찾아내어 끊임없이 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외출하셨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다. 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얼마나 내 탓을 하시는지 모른다. 자신의 인생이 나 때문에 망가졌다고. 왜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안 했냐고, 나는 생각나지도 않는 그날의 일을 따져 물으신다. 병원 1층 식당에서 먹었던 시래깃국의 냄새와 철제 식판에 부딪히던 내 숟가락 소리를 이야기하시며 화를 내셔. 내가 그때 ‘나 죽을지도 몰라요. 회사가 그렇게 중요해요?’라고 했다고 하신다. 그랬겠지, 그땐 너무나 두려웠으니까.

그런데 자기가 그 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자길 왜 존중해주지 않냐는 둥, 인생을 바쳤는데 결과가 이거라는 둥, 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고는 저렇게 방에서 나오시질 않는다. 처음엔 나도 노력을 해봤지만 지금은 포기했다. 말을 시작하면 아무리 내가 사과를 해도 이미 늦었다며 싸우는 걸로 끝나. 싸우는 것보단 이게 나은 건 맞지만 너무 힘들다. 네가 아버지랑 이야기 좀 해봐라.”


그때는 나도 살아나가기 바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른이니깐 알아서 해결하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집의 분위기는 그대로 굳어졌다. 아버지의 침묵과 어머니의 초조함. 아이들 눈에 할아버지는 말없이 방에서 책만 뒤적거리다가 밥 먹을 때만 나와서 화를 내는 괴팍한 노인네일 테지.


식탁엔 아버지의 목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중동의 모래바람과 잠을 줄여가며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제 끝을 향해,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분노의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막걸리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순간, 동생이 아버지의 말을 막았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그땐 어쩔 수 없었잖아요, 엄마가 일부러 아팠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고생했던 것도, 괴로웠던 것도 알겠는데 그게 도대체 몇 년 전 일이에요. 이제 지긋지긋해요. 아버지 남은 인생이 긴데 언제까지 후회하고 엄마 탓만 하면서 지내실 거예요. 그리고 이제 막걸리는 그만 좀 마시세요, 당도 있는 사람이. 차라리 와인이 낫다니깐 와인 드세요. 신경 써서 사 온 거예요.”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시더니 고개를 숙이셨다. 잠시 그대로 계시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분노가 가득 찬 멍한 눈으로, 평소에 어머니를 쳐다보시던 그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셨다.


“니 그리 잘났나?”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동생은 잠시 멈칫하더니 감정이 복받쳤는지 드레스룸으로 쓰는 구석방으로 달려갔다. 처남은 눈치를 보더니 동생을 달래려 방으로 향했다. 식탁엔 나와 어머니만 남겨졌다.


마침 아이들이 보던 영어 애니메이션이 끝났다.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듯 다른 것을 틀어달라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리모컨을 들고 유튜브에서 빈 소년 합창단을 검색하셨다.

“오늘 크리스마스니깐 캐럴 좀 듣자.”


Silent night, Holy night.


금발 머리를 가지런히 빗은 소년들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조용해졌고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목구멍에 들러붙은 끈적끈적한 바비큐소스를 씻어내려 아버지의 머그잔에 남아있던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머그잔이 식탁과 부딪히는 소리가 잠시 소년들의 성스러운 목소리를 방해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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