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야적장에는 597개의 공중전화박스가 있었는데, 이는 27행 27열로 계획된 야적공간에서 23행의 3번째 열까지 채우고 있다.
제1 야적장의 공중전화박스 관리인인 나의 역할은 이 597개 공중전화박스의 유지보수이다. 나는 매일 30개의 공중전화박스를 살펴보는데 이는 한 달 주기로 야적장 내의 모든 공중전화박스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공중전화박스의 유지보수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전면부의 폴딩도어의 힌지를 검사하고 매끄럽게 움직이도록 기름을 칠한다. 둘째, 동전을 넣고 수화기를 들어 신호가 울리는지 확인하고 울리지 않을 경우 매뉴얼에 따라 수리를 진행한다. 셋째, 키패드를 하나하나 눌러 키감을 확인하고 세척이 필요할 경우 세척한다.
나의 근무시간은 하루에 8시간, 480분이기에 한 공중전화당 16분의 유지보수 시간을 할애한다. 16분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이다. 정확히 16분을 할애한 덕에 내 근무시간은 빈틈없이 가득 차 있다.
나의 일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일 검사할 30개의 공중전화박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다음 날도,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10년 뒤에도 매일 30개의 공중전화박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 업무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20년 뒤의 어느 날에도 정확히 나의 임무를 완수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자신 있는 건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다. 나는 공중전화박스 유지보수를 사랑하는 달인이 아니다. 나는 내 일의 권태로움을 잘 알고 있다. 권태로움을 버티는 일, 아무 변화도, 자극도 없는 지겨움을 버텨내는 것이 나의 강점이다.
어느 날, 제1 야적장에 1개의 공중전화박스가 배달되었다. 이 598번째 공중전화박스에는 사람이 한 명 들어있었다. 내가 그를 발견한 것은 그날의 14번째 점검 대상이던 392번 공중전화박스로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그는 394번 공중전화박스로 뛰어들어가더니 수화기를 들고 바쁘게 번호를 눌러댔다.
한창 392번 공중전화박스 폴딩도어의 2번째 힌지에 기름을 치던 중에 그가 나에게로 달려왔다. 그는 쌀쌀한 날씨에도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성급한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사람이 있었군요, 잘 되었습니다. 전화를 거는데 수신자부담으로 걸어서인지 받지를 않네요. 동전이 있으면 제게 하나만 빌려주십시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동전을 받아 들더니 393번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동전을 넣고 키패드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392번 박스의 폴딩도어 힌지 검사가 다 끝나고 전화기의 상태를 살피던 때였다. 그가 392번 공중전화박스의 문을 벌컥 열더니 외쳤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당신은 누구죠? 저는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여기는 제1 야적장이고 저는 이곳의 관리인입니다.”
“잘 되었습니다. 당신이 관리인이라면 저를 이곳에서 내보내 주십시오.”
“제 임무는 제1 야적장에 적치 중인 공중전화박스의 유지보수입니다.”
그는 매서운 눈길로 나를 노려보더니 숨을 내쉬었다. 그가 내뱉은 숨과 함께 그의 몸이 쪼그라들었다. 더러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움츠러들어버린 어깨 사이로 고개를 파묻은 채, 그는 잠시 멈춰있었다. 잠시 뒤 그는 맥없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축축한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요. 평생 한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이젠 그게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만 간신히 기억할 뿐이에요. 거리에는 온통 모르는 얼굴뿐이고 사람들에게서는 낯선 냄새가 납니다. 그들은 엄한 얼굴로 길 잃은 저를 비난합니다. 마치 버릇없이 구는 아이를 대하듯이 날 선 얼굴로 저를 야단치다가 갑자기 동정 어린 눈길을 보내요. 제가 도망칠 곳은 공중전화박스뿐입니다. 대체 내게 다들 왜 그러는 겁니까?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가요?”
뜨거운 입김으로 범벅된 말과 축축하고 뜨거운 손의 기운이 나를 덮쳤다. 시계를 보니 392번 전화기의 점검을 마치기까지 8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서두르면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는 제1 야적장의 관리인일 뿐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큰길 건너편에 제2 야적장이 있다는 사실과 어딘가에 제58 야적장이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제58 야적장이 끝인지 더 높은 숫자의 야적장이 존재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는 내 손을 놓더니 허리를 천천히 세우며 좀 전의 날카로운 눈매로 돌아갔다. 그의 얼굴에는 점점 생기가 돌았다. 마침내 그의 척추뼈들이 모두 서고 목뼈까지 서서 키가 10cm는 더 커졌을 때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분명해졌군요. 마지막 야적장의 마지막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게 되면 모든 것이 확실해질 것입니다. 이제 다시 달릴 때군요. 아마 이 여정의 끝에선 좀 더 강해진 제 자신을 만나게 되겠지요. 자, 제2 야적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제2 야적장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멀리서 제1 야적장과 제2 야적장 사이의 8차선 도로에 늘어서 있는, 노랗고 침침한 가스등 불빛이 보였다. 그는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
392번 공중전화기의 전화기에는 이상이 없었다. 살짝 뻑뻑한 6번 키 주변을 세척한 후에 시계를 보니 할당된 점검시간이 아직 3분 남아있었다.
392번 박스의 좁은 공간에 서서 3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조금 전의 사내가 신호등도 없는 8차선 도로를 건너고 있는지, 덤프트럭들이 울려대는 요란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커버 이미지: "광화문 거리_0041" by 조은비, 공유마당, CC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