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삼척해변은 꽤나 더웠다. 해변의 한 구석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몇 명이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챙기고 있었다. 아직 해수욕장은 개장하지 않은 터라 바다에 들어가려 하는 이들은 그들뿐이었다.
나는 뒷짐 진 손 한쪽에는 양말을 구겨 넣은 운동화를 들고, 긴 면바지의 아랫단을 두 번 접은 채로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발바닥이 햇볕에 익은 모래를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여기 근처에 카페가 있습니까?”
헝클어진 머리, 짙은 눈썹, 프린팅 된 무늬가 자글자글해지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 좀 두꺼워 보이는 카고 반바지, 그 아래로 보이는 무성한 다리털, 등산 백팩. 스마트폰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카페를, 아니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해도 놓칠 수가 없는 카페가 어디인지 물어본다는 사실이 미심쩍었다.
“모래사장 따라 올라가시면 저쪽에 메가커피가 있습니다. 좀 더 좋은 카페를 원하시면 오른쪽으로 가시면 몇 군데 더 있고요.”
“감사합니다. 친절한 당신께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도를 아십니까’는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믿었는데. 해수욕장에서 ‘신의 가호’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몰랐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일까. 이 남자에게서 벗어나고 싶기보다는 이 남자의 헛소리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바다에서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해변에서 보이던 여성들이 기어코 바다에 들어가더니 파도에 휩쓸려 점점 해안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해변에 구조요원은 없었다. 나는 멈춰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옆에 있던 남자는 구조 요청 소리를 듣자마자 바다 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달려가면서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어댔다. 바다에 도착해서는 스마트폰을 들지 않은 팔을 휘저어보기도 하고 해변 뒤쪽에 있는 줄이 연결된 구조용 튜브를 끌고 와 던지기도 하였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119에 전화를 할 생각도 못한 나였다. 그 여성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는 생각보다는 지정되지 않은 시기에 바다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규칙이 내 머리를 먼저 스쳤다.
다행히 파도의 방향이 바뀌어 구조를 요청했던 여성들은 물살을 따라 해안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그 여성들의 튜브를 잡고 끌어 파도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옮겨주었다.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다행입니다. 포세이돈께서 저들을 잡아가지 않으셨으니까요. 준비도 없이 차디찬 먼바다로 끌려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죠.”
“포세이돈이요?”
“네, 포세이돈 모르십니까? 위대하신 바다의 신이죠.”
함께 카페로 걸어가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여행 중이라고 했다. 집을 나온 지 세 달째라면서 자신의 모든 짐은 등에 맨 30리터짜리 등산백팩에 있다고 했다.
“세 달째 우리나라를 여행하시는 건가요? 어디 어디 가셨어요?”
“이곳저곳을 헤맸죠. 저는 아테네 여신의 기운이 강한 곳을 찾고 있어요.”
“아테네 여신이요?”
“네, 저를 수호해 주시는 지혜의 여신이시죠.”
어느덧 메가커피에 도착한 우리는 음료를 주문했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기본 사이즈를, 그는 메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애매한 시간이었는지 대기 없이 음료가 바로 나왔다. 그는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키더니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테나 여신의 음료입니다. 이 축복받은 음료를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신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테나 여신의 음료라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러시겠죠. 그리스 사람들은 커피의 존재를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면 누구나 단번에 그것이 아테나 여신의 음료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겁니다. 머릿속 안개를 걷어내 주는 이 차고 쓴 음료를 마시자마자요.”
각자의 음료를 들고 우리는 다시 해변으로 내려가 함께 걸었다. 그는 걷는 내내 옆에서 자신이 여행했던 장소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바람이 불던 대관령의 양떼목장에서는 아레스 신의 기운을 느꼈고 태안의 해안사구에서는 아프로디테 신의 기운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순천의 선암사에서 느낀 데메테르 여신의 기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아까 그가 구해주었던 여성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까 그분 맞으시죠?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한 것이 아니니까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네? 아니 그래도 저희를 구해주셨는데 작은 것이라도.”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한 일이 아니래도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 여성들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연거푸 인사하더니 등을 돌려 그들의 튜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뻔뻔하게도 수영복만 입은 여성들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테나 여신의 음료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닌 맥주가 들려있었더라면 저는 제우스 신의 아름다운 황소처럼 저 님프들의 엉덩이를 쫓아 달려갔을지도 모릅니다. 아, 여신이시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물론 제가 저들에게 가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더라도 그 또한 신들의 뜻이니 훌륭한 일이었을 테지만요.”
그는 빨대를 힘차게 빨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 물론 보시다시피 저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사랑을 많이 받고 태어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저를 이끌어주시는 일은 흔치 않죠. 대신 아테나 여신께서 저를 특별히 보살펴주고 계십니다.”
이 정신 나간 남자에게 나를 그리스 신들께 드리는 제사에 끌고 갈 생각은 없는듯했다. 나는 조금 안심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정말 그리스 신들을 사랑하시는 것 같은데 왜 그리스로 가시지는 않나요?
“아, 그건 제가 공항에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사고를 두려워하시는 건가요?”
“물론 그것도 있습니다. 사람이 태양 가까이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보다도 저는 공항의 공기를 견딜 수가 없어요.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아닌 이상한 온도, 회색빛 풍경, 마치 신들의 음성인 양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듯 쉼 없이 바뀌는 현황판.
델포이의 신성한 기운과, 트로이에 서려있는 영웅들의 숨결과, 오디세우스의 위대한 항해길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모두 공항에서 발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시다시피 헤파이스토스 신이 지하에서 흉측한 괴물들과 일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 신들을 만나려면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씩 웃으며 답했다.
“제가 섬기는 올림푸스의 신들은 그리스에만 머무는 신들이 아니에요. 그분들은 올림푸스에 살며 온 세상을 관장하시는 분들이시죠. 그분들은 화순의 들판에도, 증평의 산자락에도, 여기 삼척의 해변에도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저희가 최선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계시죠.”
그는 장난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 죽은 신화 속의 신들을 믿고 있는 듯했다. 나는 슬슬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내 옆에서 혼자 이죽거리며 천박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도를 아십니까’는 아니지만 어차피 미친 사람이었다. 다시 볼일도 없는 사람인데 속시원히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심리상담 같은 건 받아보셨나요?”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온 얼굴을 보기 흉하게 찌푸리며 웃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차게 웃던지 종국엔 목에 사래가 걸리고 말았다. 그는 한참을 켁켁대더니 겨우 웃음을 참으며 내게 답했다.
“심리 상담이요? 아 정말, 너무 웃었네요. 저기요,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만든 영화란 게 겨우 인사이드아웃입니다. 보셨죠 인사이드 아웃? 그 사람들은 고작해야 올림푸스의 입구에서 얼쩡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버럭이, 기쁨이, 슬픔이라뇨. 그런 어설픈 존재들을 믿느니 광휘에 둘러싸인 제 아테나 여신님과 번개를 한 손에 든 위대하신 아버지 제우스, 용맹하고 피에 굶주린 아레스를 믿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 심리상담이라니.”
그의 웃음은 한참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너무나 웃어서 내 질문이 잘못되었나 돌아보게 될 정도였다. 웃음을 멈춘 그는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제게 이런 웃음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삼척은 이 웃음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친절함과 재간을 두루 갖추신 당신은 필경 헤르메스 신의 가호를 받고 계실 겁니다. 아니면 이 삼척에 위대하신 전령의 신의 기운이 가득한지도 모르겠군요. 다시 한번 당신께 신의 가호를 빕니다. 저는 이만 다음 행선지로, 아테네 여신의 기운이 가득한 곳을 찾아 떠나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이 화장실이었던 것을 보면 빠르게 다 비웠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의 방광을 자극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적당히 식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입 마시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미친 광인은 그만의 논리로 어디서든 잘 살아갈 터였다. 나의 생각은 그를 만나기 전 골몰하던 주제들로 옮겨갔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내 생애를 돌아보며 지금의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따져보았다. 그리고 해변이 끝나갈 때쯤에는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내 삶의 의미에 대해 고찰했다.
맑았던 하늘에 뭉게구름이 몰려왔다. 비가 오기 전에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해변의 모래를 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산책을 서둘러 끝내고 해변에 주차해 놓은 나의 차로 되돌아갔다. 발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고 차 문을 닫은 채 차 안에서 나만의 사색을 조금 더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