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바다를 보러 해변에 간다. 세종시에 사는 누나는 언젠가 내게 ‘너는 바다 옆에 살면서도 그렇게 바다가 보고 싶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건 동해 바다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동해 바다는 나에게 말을 건다. 어서 와서 덤벼 보라고. 보잘 것 없는 네가 삶을 투쟁이라 지껄이며 맥주를 들이키거나 커피를 홀짝거릴때도 나는 쉬지 않고 커다란 바위 산을 모래로 만들고 있다고.
겨울의 초입이었다. 해변에서 보이는 산은 벚나무 낙엽의 붉은 갈색에서 앙상한 나뭇가지 뿐인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봄이 올때까지 저 산은 더 앙상해지고, 염치없는 칡넝쿨만이 자라나 나무들을 뒤덮어 갈 것이다. 칡넝쿨은 저 산을 내 손등처럼 흉측하게, 툭 튀어나온 힘줄 사이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피부 밑 검버섯이 살짝 비춰보이는, 쩍쩍 갈라진 메마른 곳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벤치에 앉아 해변을 바라보았다. 나의 정면에는 갈매기 예닐곱 마리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들도 저 산을 바라보는가. 저들도 자신의 빠지는 깃털을, 윤기가 줄어들어가는 모습을 바다에 비춰보며 한탄하는가. 갈매기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뚫어지게 보며 얇은 다리로 모래 위에 서있었다.
오른편 먼 곳에 그녀가 있었다. 진녹색 긴 원피스에 두툼한 흰색 가디건을 입은, 긴 머리를 풀고 있는 그녀. 그녀의 아이인지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그녀 뒤에서 모래를 흩어놓고 있었다. 뒷짐을 진 그녀의 손에는 플랫 슈즈 한쌍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발등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해변의 건너편에서 큰 키의 건장한 청년이 뛰어왔다. 붉은색 반팔티와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빠른 속도로 뛰던 청년은 그녀 앞에 멈추어섰다. 짧은 그의 머리는 잘 세팅된 듯 얼굴에선 땀이 비오듯 흐르는데도 젖어서 늘어지지 않았다. 청년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청년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듣다가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청년은 살짝 목례를 하고 가던 길을 계속 뛰어갔다. 그녀는 아까처럼 천천히, 이제는 청년이 향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더이상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발등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있었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해변 뒤쪽 벤치에 앉아있던 남자가 큰 소리를 친 것은. 내가 왔을 때부터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남자는 온 해변에 들릴만큼 큰 소리로 “서아 엄마! 쫌!” 하고 소리쳤다. 그의 찌푸려진 미간과 바람에 제멋대로 휘날려버린 머리가 불쑥 내 시야로 들어왔다. 진녹색 원피스의 그녀는 발을 모으고 멈춰 섰다. 그녀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멀어지던 붉은 티셔츠의 청년은 제자리에 멈춰서 큰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을까. 그녀는 발꿈치를 들어 앞으로 가려다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서아에게로 향했다.
청년은 무슨 생각인지 멈춰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걸었다. 그녀는 서아의 손을 꼭 잡아 쥐고 해변의 끝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걷는 내내 발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왼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관광버스에서 화사한 색의 등산복을 입은 60대의 남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작은 가방을 맨 채 해변의 초입에 있는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부부들일까.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고 껴안고 허리에 손을 감았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벤치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진녹색 원피스를 입은 그녀를 만나야했다. 만나서 당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당신 인생의 마지막일수도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음을, 염치없는 칡넝쿨과 거센 파도가 당신을 파괴하기 전에 당신이 도망쳐야함을 알려주어야 했다. 나는 그녀를 쫓아 해변의 끝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내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을때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뒤축이 닳은 플랫슈즈, 푸석한 머리카락 사이 한가닥 튀어나온 흰머리, 손목에 채워져있는 아이의 머리끈 2개. 그녀는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이가 옆에서 쫑알대고 있었지만 그녀는 다만 조용히 ‘응’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더이상 희망은 없었다. 청년에게 달려가라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당신은 후회할 것이라고, 단 한번 만이라도 저 청년과 함께 허름한 모텔에서 아침을 맞이하라고. 세상은 당신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얼마 남지 않은 당신의 젊음을 다시 한번 삼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은 체념하고 있었다.
청년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그녀의 남편은 다시 전화기를 붙잡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와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그녀가 잠시 고개를 들어 청년을 쳐다보았지만 찰나였을 뿐이었다. 저 멀리서 기차가 빠른속도로 달려왔다. 갈매기들은 기차소리가 싫은지 날아올랐고 사진을 찍던 등산복 무리는 기차를 보며 환호했다.
나는 뒤로 돌아 내가 앉아있던 벤치로 향했다. 신발 안으로 들어온 찬 모래 알갱이가 발 아래에서 서걱거렸다. 등산복 무리가 버스로 돌아갔는지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 빨간색 관광버스는 굉음을 내며 시동을 걸었다.
벤치에 앉으려다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새노랗던 은행잎들은 다 사라져버렸고 지루한 진녹색의 히말라야 삼나무만이 길거리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겨울은 길고 칡넝쿨과 파도는 서서히 산을 집어삼킬 터였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바다와 맞닿은 산의 끝자락에 선 나무가 되고 싶었다. 그 나무라면 올 겨울내에 칡넝쿨에게 점령당하고, 파도에 의해 땅에서 파헤쳐 질 것이다. 다시 다음해를 맞아, 없는 젊음을 짜내어 초록색 이파리를 틔웠다가 빨간 낙엽이 된 후에 서서히 겨울을 맞는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