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부터 12개월까지, 두 개의 일기

by 조이현

1.

'정녕 내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네가 태어나던 날, 나 스스로 다짐한 문장이다. 출산휴가와 유아휴직을 더한 1년 반간의 공백기를 시작하며, 너라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며. 정말 넌 내게 혁명이자 해방일 줄로만 믿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12개월이 지난 오늘, 난 이 새벽에 잠에서 깨어 임시보관함에 담긴 조기복직 의사를 밝히는 메일을 매만지고 있다.


피곤하다. 삶의 리듬이 모두 너에게 맞춰져 있기에 잠이 늘 부족하다. 내가 생산해 내는 가치라고는 너에 대한 보살핌뿐이다. 나란 사람의 효용가치는 보살피는 존재일 때 가장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젖병을 닦고, 기저귀를 갈고, 보채는 널 안아서 달래는 것이 내 전부일까.


정녕 내가 잃은 것은 나라는 사람이고 얻은 것은 너라는 쇠사슬뿐인 것 아닐까.


순백의 옷을 입고 꼼지락 거리는 너를 내려다본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의 입에서 나는 그 달큰한 냄새는 나의 몸을 욱신거리게 한다. 지금의 나는 전등이 꺼진 후에 희미하게 빛나는 필라멘트와 같다. 연약한 온기만 남아있을 뿐 빛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너를 안을 때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감촉, 네가 웃는 소리, 젖병을 물고 꿀떡거리는 너의 입술을 난 사랑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는 내가 안을 때마다 몸을 뒤로 젖히며 뻐대고, 웃다가 딸꾹질이 나서 울기 시작하며, 젖병을 놓치고 옷에 흘리면 짜증을 낸다. 그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나는 인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다 자란 어른이다.


너는 너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지 못했다. 넌 완결된 존재가 아니다. 난 너를 만남으로 세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나의 노동을 필요로 했다. 자유로운 왕이 될 것이라 믿었던 나는 그림자 없는 거지가 되어버렸다. 매일이 파티이기에 오늘이 목요일임을 알 필요가 없는 왕이 아니라, 목요일도 금요일과 같이 고되기에 오늘이 목요일임을 까먹은 노비일 뿐이다.


임시보관함 속 메일을 연다. 터치 한 번이면 족하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육아휴직 수당을 받는 것보다 돈을 벌고 사람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신생아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얼마의 값어치를 하는 걸까.


잠든 네가 내 꿈을 꾸는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2.

1년 전 오늘 네가 태어났다. 아니, 어쩌면 어제.


공식적으로 너는 자정을 1분 넘긴 시간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네가 처음 세상의 빛을 본 순간, 그러니까 네 엄마의 배가 수술실의 칼에 의해 갈라진 순간이 어제 인지 오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간호사에게 그걸 물어보기에 나는 미숙했다. 설령 답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너의 생일을 정정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너는 그저 하나의 영상에 불과했었다. 불쾌하게 꿀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꾸만 이리저리 바뀌는 화면 속 너는 유튜브 속 동영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의사가 사내아이라느니, 손을 빨고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해주어도 그게 ‘너’라기엔 뱃속 아이들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네가 태어난 지 8개월, 이제 나는 너를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다. 너의 뭉툭한 코, 진한 눈썹, 늘 젖은 듯 촉촉한 머리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 입에서 나는 앙버터 같은 향기, 통통한 손과 발의 촉감. 정녕 너는 완결된 세계다. 너는 흙에서 돋아나는 새싹이 아니라 한 가지에서는 꽃을, 다른 가지에서는 잎의 새싹을 키워내는 하나의 나무다.


창밖에서 까치가 운다. 원래 새벽에도 까치가 울었던가. 네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울면서 잠에서 깬다. 너를 안아 든다. 내 품이 편안한지 등을 다독여주니 금세 잠든다. 내 어깨에 기대어오는 네 머리의 무게를 느낀다. ‘팟’하고 꺼지는 LED등이 아닌, 서서히 잦아드는 필라멘트 전구의 빛처럼 너는 내게 스며든다.


네가 태어나던 날에도, 아니 네가 하나의 영상에 불과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훨씬 더 너를 사랑한다. 그때는 내가 너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꼈다면 지금은 내가 너에게 받는 사랑이 과분하다고 느낀다.


기저귀를 찬 너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자리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잠이 오기를 청해 본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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