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의 어린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그 동네가 이제 우리 동네다라고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지금은 오랫동안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신축빌라로 이사를 갔는데,
주변에는 조금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다.
유일하게 아이들이 몰려서 노는 곳이
집 앞 넓은 공터에 있었는데,
공 모양을 한 뺑뺑이라는 놀이기구 앞이었다.
공 모양의 뺑뺑이 안에 앉아서 타기도 하고,
뺑뺑이 모양을 한 쇠 막대를 두 손으로 꽈악 잡고
몸의 반동으로 휘휘 날리며 밖에서 타기도 했다.
특히 안에서 탈 때에는 더 큰 가속도를 위해
공 모양 안쪽의 기둥이 아닌,
바깥 방향으로 몸을 기대어
오른쪽 다리를 뺑뺑이 밖으로 내밀고는
땅을 딛으며 돌리면 그렇게 빨리 돌 수가 없었다.
그 재미에 푹 빠져 몇 날 며칠을,
동네 친구들과 뺑뺑이를 탔었더랬다.
코찔찔이의 시간은,
뺑뺑이 안에서 무한히 흘렀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뺑뺑이를 타는데,
그날 일이 터졌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이것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아야
굉장한 가속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호흡이 한순간 안 맞으면서
그 가속도로 돌던 뺑뺑이의 오른쪽 다리가 걸려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오른쪽 발등이 순식간에 부었고,
급한 대로 한의원에 가서
생애 첫 침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한창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던 나라서,
다리를 다친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 중이었는데,
학교에서 계주 달리기 반대표를 뽑는다며,
선생님께선 몇 팀을 만들어 달리기를 시키셨다.
나의 다리는 여전히 부었었고, 절뚝거렸었는데,
나는 계주 달리기 반대표가 꼭 하고 싶었다.
2등까지만 들어오면 대표를 할 수 있다 해서,
그 다리로 뛰었다.
내가 달려라 하니의 하니였다면,
그 다리를 하고 1등을 했겠으나,
난 하니가 아닌 어린이였고,
아쉽게도 3등이라 대표가 되지 못했다.
그때 조금 큰 좌절의 맛을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승부욕이라는 녀석과 대면한 것은
그날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과연,
내 마음속 승부욕이 여전히 남아있는진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