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6 어린이의 상처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나의 초등학교 6년 시절 중 가장 친구들이 많았던 때는
초등학교의 제일 큰 어린(어른)이, 6학년 때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제법 있어서였다.
그중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같은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나와 대화도 잘 통하고,
비밀도 많이 공유하는 단짝친구였다.
그리고 또 그 무렵,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한 명과도 친해졌는데
등하교 때 같이 다니면서 우정을 쌓았었다.
단짝친구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외에
4~5명이 더 있어서 우리는 점심시간에 매일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았었다.
자연스럽게 무리가 형성되었고
나만의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와는
다 같이 친한 친구로 형태가 바뀌며,
제1의 자리를 모두와 함께 나눴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무리에서 나의 단짝친구와 나, 같은 아파트 친구가
지옥의 그룹, 3인이 되었던 것이.
물론 고무줄놀이를 하는 그룹 친구들과
다 잘 지냈지만,
유독 나는 이 둘과 더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그 당시 유행하던,
찐친들만 할 수 있다는 그것,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 2명이 고무줄놀이 그룹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지만,
처음과는 사뭇 달라진 구조가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나에게는 이 친구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고,
그 친구도 수시로 내가 가장 친한 친구다라고 말했었다.
그렇다고 다른 한 명을 따돌리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다 같이 잘 지냈지만 그저 마음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운 친구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이었다.
이때 내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겠지.
같은 아파트 친구가 나와 둘이 교환일기를 쓰자고 제안했다.
그때는 공책을 위, 아래로 반을 갈라 서로 일기를 쓰고
교환하는 것이 유행이었어서 우리는 그때부터 교환일기를 썼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날 만큼 사소했거나,
기억을 못 할 만큼 시간이 지났거나,
기억하기 싫은 만큼 마음이 닫혔거나, 겠지만.
어느 날 교환일기를 같이 쓰던 친구가 하나의 제안을 했다.
우리의 교환일기를 다른 친구에게 보여주자고.
편의상 3인의 친구 중
같은 아파트 친구를 A, 다른 친구를 B라고 표시하겠다.
A가 나와 A가 같이 쓴 교환일기를 B에게 보여주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그래라고 답했다.
우린 3명이 제일 친하고 보여줘도 문제가 없었으니까.
며칠 뒤,
A의 교환일기 안에 여러 번 접어 안에 내용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일기에 A는 접힌 종이를 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접힌 종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보지 말라고 한 단짝의 당부였으니 그 말을 지켰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지난 뒤,
A는 갑자기 접힌 부분을 읽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A의 일기 속 접힌 종이 안의 비밀을,
A의 마음속 구김살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심스레 다림질했다.
접힌 종이 안에는 A와 B가 서로 나눴던 일기가 있었고,
거기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라며,
A와 나의 교환일기에서 나를 지워내고 있었다.
초6 어린이에게
친구, 특히나 그동안 친구가 없었던 어린이에게
처음으로 내가 특별한 친구라고 말해줬던 그 친구라는 의미는
전부였다.
소중한 친구 두 명이
서로가 가장 좋은 친구라는 다정한 고백으로
나를 밀어내는 Go Back으로 공격하는
그 어린 나이대만의 순수한 잔인성이었다.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친구는 없다고.
다시는 단짝 같은 것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