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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8. 2024

부추 수제비 먹을까?


일요일 저녁

웬일로 소파 앞에 쪼르륵 모여있는 우리 가족

일요일도 모이기 힘든 우리 가족인데 날씨가 여간

더운 게 아닌가 보다

모두 시원한 에어컨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 주말인데 오후에 예쁜 카페라도 갈까?

- 아니 차 마실 돈으로 과일을 좀 사 오는 게 어때?

- 그럴까?

- 과일 사 올 때 밀가루 한 봉지 사와.

- 밀가루는 왜?

- 수제비 해 먹게


오후에 시동생 편으로 시어머니께서 부추를 보내주셨다.

시댁 부추는 유기농에다 향도 짙고 맛있다.


- 어머니가 보내주신 부추 보니깐 수제비가 먹고 싶네.

부추 넣고 수제비 끓여 먹자.


어릴 적 엄마는 수제비를 끓이면

항상 부추를 넣어서 만들어 주셨다.

엄마표 수제비는 무조건 부추와 한 세트였다.

어릴 적 나는 수제비에 들어간 부추가 너무 싫었다.

엄마의 수제비는 맛있기는 했지만

국물이뿌옇고 빡빡했다.


고등학교 때 동네에 유명한 곰분식이라는

수제비집이 있었는데 아주 허름한 분식집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 집 수제비는 뽀얀 멸치 국물에 부추 없이

감자와 파를 넣고 깨소금과 김가루를 뿌리고

참기름도 한 방울 넣어 감칠맛나게 맛이 좋았다.

그 수제비를 먹은 후로

엄마의 수제비도 바뀌길 바랬다.


- 엄마 엄마는 수제비를 맑게 끓일 수 없어?

파는 수제비는 국물도 맑고 맛있던데...

그리고 그 부추 좀 안 넣으면 안 돼?

부추향이 너무 짙어.


엄마에게 열변을 토해 말했지만

엄마의 수제비는 한결같이 하얀 국물에

부추가 들어 있었다.


언젠가 엄마 혼자 부엌에서

수제비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국물이 하얗게 변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까지 총 6 식구의 수제비를

혼자도 만들던 엄마

수제비를 혼자서 떼어 넣으니

수제비를 계속계속 끓고

수제비가 퍼지면서 국물이 자꾸만

하얗게 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난 메뉴가 수제비일 때는 엄마 옆에서 가끔 도와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처럼 빠르고 얇게 잘 떼어 던져 넣는데

나는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 엄마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얇게 뗄 수 있어?

- 이렇게 하면 되지?


아무리 엄마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해도

나는 잘 되지 않았다.


시집갈 때까지도...나는 엄마의 수제비 떼는

비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 지성아 엄마 손목이 아픈데 밀가루 반죽 좀

도와줄래?


늘 주방에서 나를 잘 도와주는 둘째가

호기심이 생겨서인지 단번에 주방으로 달려왔다.


- 엄마 어떻게 하면 돼?

- 엄마가 물을 부어 줄 테니까 이렇게 이렇게 치대면 된다


주짓수를 하는 아들이라 손아귀 힘이 좋아

밀가루 반죽을 잘할 것 같아 부탁했는데 반죽도 척척

잘한다.



- 네가 도와주니깐 금방 되네.

이제 냉장고에서 조금 숙성시키자.

그리고 넣을 때 다시 엄마 좀 도와줘


숙성시키는 동안 육수를 만들고

함께 넣을 야채를 준비했다.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냉장고에서 반죽을 꺼내니 숙성이 되어 쫄깃해졌다.


- 지성아 지금부터 우리 얇게 떼서 넣는 거다.

생각보다 얇게 떼기가 힘드니깐 이렇게 해


둘째는 시키는 데로 곧잘 따라 한다.

나를 포함해 남자 셋의 음식을 만들려면

양도 제법 많아야 한다.

수제비는 떼어 넣을 때 시간차가 너무 길면

먼저 넣은 수제비가 퍼질 수도 있다.

빨리 넣어야 하는데 빨리 넣다 보면 수제비가

두꺼워져서 밀가루 맛이 강해지고 맛이 없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둘이 빠를 듯하여 둘째랑 열심히 넣었다.


수제비를 넣으면서 중2아들이 폭풍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내용은 담임 선생님 욕이다.

그동안 담임 선생님 욕을 하면

제대로 듣지도 않고 늘 좋은데 뭐가 불만이냐고

아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오늘 함께 요리를 하면서

집중해서  들어보니

아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선생님이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맞장구를 쳐 주었다.

공감을 해주니 그동안 쌓였던 마음이 풀리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수제비를 다 넣는 내내 둘째가 이렇게 수다쟁이였나 싶을 도로 아들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 지성아 다 된 것 같다. 너는 계란 좀 풀어줄래?



둘째는 계란을 풀고 나는 부추를 총총 썰어서 냄비에 솔솔 뿌렸다.

부추향이 향긋하다.


어릴 적에는 그리 싫다며 엄마에게

짜증 내던 사춘기 소녀는 이제 엄마가 되어

수제비에 부추를 넣는다.

부추를 보니 엄마가 만들어준

부추 수제비가 생각난다


엄마 만들어 주신 빡빡하고 얇게 뗀

부추 수제비가 생각나는 날이다


다행히 우리 세 남자들은 부추를 참 잘 먹는다.

부추를 보니 부추 겉절이 좋아하시는 친정아빠도 생각이 난다.

가까이 계시면 좀 나눠 먹으면 좋으련만...


- 와 진짜 맛있다.


남편은 국물도 시원하고 수제비는 쫄깃하고 정말 맛있다며

내 어깨를 토닥여 준다.


- 정말 잘 먹었어, 오늘 수제비 최고다.


ㅡㅡㅡㅡ


엄마는 지금도 부추 예찬론자다

부추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아냐고

나만보면 부추 설교를 늘어놓다

절대 썩혀서는 안되는 채소중 하나가

바로 부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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