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May 11. 2023

너와 함께

뱃속에서 엄마와 들었던 노래 기억나니?

큰아들과 학원 가는 길이다.
아들은 항상 내 차를 타면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음악을 튼다.
가는 동안 나는 아들의 플레이 리스트 음악을 감상한다.
'저번엔 팝이 많더니 이번 리스트에는 힙합이 많네?

쇼미 더 머니를 보더니 요즘은 힙합에 빠졌군' 혼자 생각한다.

"지호야 네가 왜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니?"
"응?"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음악을 들으면서 견뎌냈거든."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른 저녁 5시 주방은 분주하다.
6시에 **대학교 **과 단체 손님이 20명 예약되어 있다.
홀은 홀대로 세팅 준비에 한창이고 주방은 주방대로 미리 예약받은 음식 준비에 무척이나 바쁘다.

나와 동생이 호프집을 차린 지 1년이 넘었다.
동생과 나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에서 울산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 올라왔다.
긴 직장 생활이 신물이 날 때쯤 둘은 꿍짝이 잘 맞게도 함께 장사를 해보기로 다.
우리는 별 탈없이 장사를 시작했고 미혼인 두 자매는 장사가 즐거워 늦은 밤까지 일했다.
하지만 장사를 하자마자 나는 결혼을 했고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
그러니깐 지금 내 배 속에는 귀여운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금고에 일했던 동생은 셈이 빨라 홀을 맡며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기로 했고 대학시절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안주요리를 섭렵한 나는 주방을 담당하기로 했다.
형제자매가 장사하면 아무래도 부딪힐 일이 많고 의가 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기에 우리는 각자의 업무를 철저하게 분리했다.

이런 나에게 위기기 온 것이다.
요리를 해하는 데 입덧으로 인해 요리가 즐겁지가 못했다. 파전냄새나 기름 냄새를 맡으면 속이 뒤집히고 헛구역질이 나기 일쑤였다.
이 힘듦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힘은데 오늘은 단체 손님까지 예약되어 있는 것이다. 최악의 날인 것이다.

그래도 단체 손님은 매상 올려주기에 좋은 손님들이기에 힘들지만 열심히 안주 준비를 한다.
대학생들 대상 장사라 뭐든 푸짐해야 한다는 철칙아래 모든 게 다 대형인 가게다.
탕도 한솥, 파전도 특대,
하지만 나는 배는 불렀지만 여전히 30대 혈기 왕성한 나이다.
탕 6개는 후딱 만들어 낸다. 알탕 대구탕 김치전골 종류도 여러 가지다.


시간은 점점 6시가 다 되어 간다.
학생들이 한 명 두 명 들어와서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안주 준비도 다 되었고 기본 안주들을 내어준다. 학생들이 모이니 홀이 시끌벅쩍하다.
준비하느라 무리했는지 다리는 퉁퉁 붓고 허리는 아프고 힘이 들어 주방 한편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본다.
배를 문지르며 '우리 리온이 많이 힘들지? 엄마도 많이 힘들다' 마음속 이야기를 나눈다.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가 빨리 생겨 장사에 차질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동생에게 미안해서  힘들다고 내색하기도 사실 힘든 상황이다.

힘들어 지쳐 있는데 밖은 신난 분위기다.
과대가 나와서 진행을 하고 건배도 하고 단체 손님들의 분위기는 최상이다.

그때 홀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암 소 쏘리 벗 알러뷰 다 거짓말~"
나는 빅뱅의 거짓말 노래가 참 좋다. 첫 전주만 들어도 흥분된다.
갑자기 쳐졌던 기분이 업이 되면서 신나게 설거지를 시작한다. 혼자 중얼중얼 따라 부르면서
어쩜 이렇게 흥겹게 노래를 만들었는지 하며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빅뱅의 거짓말이 끝나니 다음 노래는 원더걸스의 '텔미 텔미'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 홀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고무장갑을 끼고 주방 쪽문으로 달려가 홀을 쳐다본다.
그러자 단체손님 중 몇 명의 학생들이 앞에 나와서 그 당시 유행하던 텔미춤을 추기 시작한다.

20대의 귀여운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대리만족을 느끼나 보다.
함께 따라 부르며 함께 즐긴다.

입덧이고 뭐고 힘들었던 생각들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 당시 빅뱅의 거짓말과 원더걸스의 텔미는 꽤 오랫동안 인기곡으로 정상을 달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그 두 노래를 오랜 시간 들으며 여러 학생들의 댄스 실력을 보며 즐기고 행복해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태교였다.
태교도 할 줄 모르던 새내기 장사꾼의 뱃속에서 수많은 댄스곡을 들으며 우리 큰아들 지호가 태어난 것이다.

지호는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참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어. 20대에 엄마가 그 큰 호프집을 했다고 말하면 다들 놀래더라. 엄마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단다. 이모도 엄마도 좋은 직장 버리고 시작했거든.  장사하면서 너를 가지고 몸이 참 힘들더라. 그때 엄마를 많이 위로해 준 게 음악이었어. 그때 댄스 가요 엄청 들었어. 호프집이다 보니 댄스곡 위주로 틀었거든. 그래서 네가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 같네 ㅎㅎ엄마 내가 처음 <거짓말> 들었을 때 내가 따라 불렀잖아. 처음 들은 노랜데 내가 왜 이 노래를 알고 있지 했어. 그 노래를 뱃속에서 엄청 들었구나 ㅎㅎ. 신기하다. "


"그때 생각하면 너에게 참 미안하다. 기름연기 맡으며 먹고 싶은 거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많이 못 자던 때였거든. 태어나서도 한참을 주방 한편에서 놀고 커가는 너에게 참 미안했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 지호와 함께 학원을 가면서 나와 내 뱃속에서 함께했던 그때는 이야기한다.
사춘기 아들과 함께 대화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차 안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영지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아들은 따라 흥얼거린다.
오늘도 너와 함께 가는 이 길이 참 행복하다.

#들  #대화

#사춘기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