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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자까 Mar 13. 2023

고요하고 무거운 사람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대학생 때 있었던 회식에서 누군가 나에게 했었던 질문이다. 그 회식은 내가 노래를 좋아해서 신청했던 교양가곡 수업에서 오디션을 통과한 이들이 합동 콘서트를 마치고 진행한 뒤풀이 회식이었다. 콘서트를 준비한다고 꽤 긴 시간을 함께한 이들이었으나 그들과 친해지기까진 나에겐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었다.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콘서트를 마친 나였지만, 몇 개월 남짓 알고 지낸 이들과의 회식은 오히려 더 긴장되고 불편했다. 그렇게 회식이 끝난 이후로 나와 그 사람들이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MBTI는 INTJ이자, 학창 시절에 반마다 꼭 존재하는 공기처럼 흐릿한 존재감을 지닌 학생. 그것이 나의 포지션이었다. 나이를 먹어 대학생이 되어도 성격이 바뀌어지진 않았다. 그때에는 말수도 적고 사교성도 없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억지로 축구 동아리에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운동맨 특유의 활발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해 입부 한 달 만에 도망쳐 나왔다. 당시에는 조용한 내 성격이 싫었고 스트레스도 적잖이 받았었다.


 나이 서른이 되면 자신의 고유한 성격 한 가지가 확립되어 그것은 죽을 때까지 바뀌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이 말수가 적은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다양한 사회경험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평소에 나와 동떨어진 얘기를 귀담아듣질 않는다. 살아가면서 쓸모도 없을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애사나 정치얘기 등이 그렇다. 어제 연예인 A와 B가 결혼했느니 이혼했느니 등의 얘기는 내일 회사식당에 중식메뉴가 무엇 인지가 더 중요하다. 뉴스 같은 유익한 정보를 주는 매체를 볼 때 제외하고 내가 티브이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낯선 이와 대화할 때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공통된 관심사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한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제로는 티브이와 같은 언론매체에서 전달하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이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내 입장에서 이런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어렵다.

 때문에 낯선이와 단둘이 남겨지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등 정말 쓸데없는 잡다한 생각을 다한다.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을 때는 대화 주체가 내가 아닐 때뿐이다. 이때에는 목소리 하나 안 떨고 말이 술술 나온다. 예를 들면 대화 상대가 세명 이상일 때. 물론,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조용히 듣다가 같이 맞장구를 치거나 질문하는 쪽으로 많이 얘기한다. 또는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 앞에서 과제나 업무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은 내가 술술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깜짝 놀란다.





 솔직히 말수가 적은 성격을 가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살면서 느낀 것은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라는 등의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이 잡혀 직장동료들과 술 한잔 마신적이 있었다. 2차에서 비슷한 기수들만 남고 다들 술이 들어가고 하니 너도나도 회사 상사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말수가 없고 듣기를 좋아했던 나는 적당히 공감만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러자 한 직장동료가 내게 얘기했다.


"OO씨는 진짜 남의 뒷담을 안 하는구나. 사람이 됐네 됐어."


 나라고 싫어하는 회사 상사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스스로가 성인군자 같은 인품을 가졌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별거 아닌 그 한마디는 나의 성격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말수가 적은 성격에 대해 단점만 보기보다 장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두 가지 장점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사는데 이롭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때 답답함을 느끼며 이를 밖으로 꺼냈을 때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입은 만악(萬惡) 근원인지라, 밖으로 나온 말들 중 어떤 말은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어떤 말은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난의 돌멩이가 될 수도 있다.

 불교 사후세계를 바탕으로 한 영화 『신과 함께』에는 7가지 지옥(地獄)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는 입으로 남에게 상처를 입힌 죄(罪)를 가진 자의 혀를 길게 뽑아 그 위에 밭을 가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이 존재한다. 그만큼 입으로 저지른 죄는 예로부터 무거운 것으로 여겨진다. '웅변은 은(銀)이요 침묵은 금(金)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필요할 때를 빼고 말을 아끼는 것이 나에게도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이롭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얘길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이러한 경청하는 자세는 나이가 들수록 그 중요성이 점차 커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경험은 많은데 이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화제를 주도하는 이는 공급이 많겠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누구나 나를 찾게 하는 사교계의 블루칩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두 개를 활짝 열어 두 배 이상 많이 들으라는 뜻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들은 것의 반만 이야기하라는 설이 있다. 나는 여전히 말수가 적기 때문에 살면서 불편한 점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은 이제 나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여기고자 한다. 못하는 웅변을 늘어놓을 것 없이 나답게 묵묵히 살아가는 게 가장 현명할 길이 아닐까? 내 안의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털어놓기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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