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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자까 Mar 20. 2023

술 한 잔이 담은 이야기

 나의 첫 술은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자고로 술은 집안 웃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면서 소주잔에 술을 따라 주셨다. 어른 앞에서 술을 받는 방법, 술을 따르는 방법, 마시는 방법 등 형식적으로 해야 하는 불필요한 행위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음료수는 격식 없이 편하게 마시는데 단지 알코올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다니, 도대체 술이 뭐라고?'

 첫 술은 그저 쓰고 맛없는 물을 마신 느낌이었다. 그 뒤에 점점 올라오는 알딸딸한 취기는 썩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게 세 잔 정도를 마신 후에 눈을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퇴근 후 친구들과 술을 드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렇게 종종 만취해서 집에 들어오시는 날엔 어김없이 어머니와 대판 싸우셨다. 나는 만취한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처음에는 평소의 인자한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무서움이 앞섰지만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그 뒤로는 나중에 커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면 상황 때문에 술을 안마실수는 없겠지만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술은 내 생각보다 우리 문화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첫 직장은 소위 '술문화'를 중시하는 회사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회식 운을 띄우는 부장님 덕분에 나는 한 주의 시작을 술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술을 못하는 내 입장에서 이러한 회식은 무엇보다 괴로웠었다. 회식이 잡힌 날이면 근무하는 내내 저녁에 있을 회식만 걱정하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우리 회사의 술문화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관습적인 의례를 중시했다. '첫 잔은 소맥 원샷', '꺾어마시기 금지', '잔은 항상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 등 도통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막내인 내 입장에서는 전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시고 토하고 반복하고 길거리에도 굴러보고 논밭에서도 굴러봤다. 눈을 떠보니 신발 한 짝은 어디다 두고 왔는지 없어져, 한쪽 발만 신발을 신은채 출근하기도 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느낀 점 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니 몸도 어느 정도 적응하여 남들의 페이스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주량이 된 것이다. 그때즈음부턴 나도 적당히 기분 좋은 취기를 즐기며 동료들과 편하게 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의 아내 역시 술을 좋아하여 술자리 소개팅에서 만난 관계이다.

 술에 익숙해지고 나니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술이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술은 사람들 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힘이 있다.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이 쌓여 어색한 관계도 술을 마시면 긴장을 풀어주어 서슴없이 서로의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다. 이미 친한 관계에서는 그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고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마실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과 좋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 그토록 싫었던 술이, 내가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렇게 싫지만은 않아졌다. 술로 인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술로 인해서 보다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인생살이 새옹지마'라고 내가 안 좋다고 생각한 것이 어느 순간 좋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세상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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