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같은 동네에 친한 한 살 터울 동생이 있었다. 그 동생의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어느 날 그 동생이랑 같이 그 가족들이 다니는 교회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딱히 종교에 대한 믿음도 없는 내가 교회에 간 것은 단지 새로운 놀이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교회에서는 재밌는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같이 찬송가도 부르고 예배도 드리며 그곳에서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 1년 정도를 교회에 다녔던 것 같다. 신앙심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그 1년 동안의 경험은 나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스스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생긴 것이었다.
내가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참고 배려하면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으니, 나 하나의 손해로 여러 사람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으면 그만큼 좋은 건 없지 않을까?'
이 생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이었다. 부탁을 잘 들어주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모든 사람들과 둥글둥글하게 잘 지냈었다. 그러한 나의 성격을 좋아했었다. 언제나 웃고 긍정적이며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자신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언제나 우선순위는 나보다 주변사람들이었고 그로 인해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부탁을 들어주는 일도 꽤 있었다. 이타적인 배려는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알 수 없는 우울증을 남겨주었다. 당시에는 그 우울증의 원인을 몰랐었다. 가만히 집에 있다가도 종종 기분이 안 좋아졌고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했다.
물론 명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원인이 이타적인 나의 성격이 초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고려하지 않은 삶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좀먹고 있었다.
이타심(利他心)과 이기심(利己心)은 서로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타심은 남을 위하는 마음이며 이기심은 나만을 위하는 마음을 말한다. 세상을 이타적으로 살아야 할지 이기적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 뜨거운 감자이다. 너무 이타적으로 살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져 삶에 대한 애착이 낮아질 수 있고 너무 이기적인 삶은 쓸쓸한 고독감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
대부분의 세상 이치가 그렇지만 모든 것은 적당한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타심과 이기심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이다. 어느 한쪽을 배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인식의 변화를 주면 어떨까. 내가 남을 위해하는 이 행위가 꼭 그 사람만을 위한 것일까? 나의 호의를 받은 그 사람이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그 마음이 나를 이롭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바꾸려고 꾸준히 노력해 왔다. 덕분에 과거처럼 호구같이 무분별한 호의는 베풀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에는 이제 호의를 베풀면 그만큼은 호의를 받아도 된다는 건강한 이기심이 더 생겼다. 그로인해 멀어진 관계도 있지만 아쉽진 않다. 오히려 나의 삶은 이전보다 탄탄하고 건강해졌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기부한다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