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허락하는 용기
기대는 것은 한 번도 내 삶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었다.
기대지 않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고, 기대는 순간 반드시 실망이 따라온다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배웠다. 기대는 것은 나약한 사람의 감정 같았고,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순간 마음은 어딘가부터 금이 가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기대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 선택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너무 단단해서, 스스로도 부드러워지는 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그 신뢰 위에 감정을 얹는 일은 내게 있어 항상 ‘실수’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명제는 나를 오랫동안 고립시켰고, 그 고립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단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아주 단순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아무도 믿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 다음, 더 근본적인 질문 하나가 따라왔다.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있는가.’
심리학에서는 애착을 ‘관계의 지도’라고 부른다. 우리가 어린 시절 형성한 애착 패턴은 이후 삶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안정 애착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기대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친밀함을 두려워하고, 기대는 순간을 불편하게 느낀다. 기대는 것은 곧 의존으로 연결될 수 있고, 의존은 곧 상실과 상처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피형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리 두기를 선택한다. 가까워지고 싶지만,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결국 관계를 조심스럽게 후퇴시키거나 침묵으로 스스로를 숨긴다. 나는 그 패턴 속에 익숙하게 갇혀 있었다. 혼자가 편하고, 침묵이 안전하고, 독립이 미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는 늘 아무도 모르는 외로움이 따라왔다. ‘괜찮다’는 말로 감정을 덮는 동안, 나는 내 안의 ‘괜찮지 않음’을 아무도 꺼내보지 못하게 했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애도 일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나는 두 번 죽는다”고 했다. 하나는 그 사람을 잃었을 때, 또 하나는 그 사람에게 기대고 있던 나의 마음이 사라질 때. 기대는 것은, 그래서 관계의 깊이를 드러내는 행위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기대지 않는다. 마음을 주지 않은 대상에게 기대지 않는다. 그러니 기대는 것은 곧 마음의 증거이자, 존재의 개방이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위험한 감정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기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라, 감정의 일부분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존재가 된다. 그 불안은 익숙하지 않다. 통제에서 벗어나는 그 순간은 어딘가 허약하고, 애처롭고, 스스로가 작아지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기대지 못한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지켜온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기대는 것은, 단지 ‘무게를 넘기는 일’이 아니라, ‘신호를 보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괜찮지 않다고, 지금은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이 순간만큼은 나도 기댈 수 있는 존재이고 싶다고. 그 신호는 말이 아닐 수도 있고, 아주 조심스러운 몸짓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신호를 내보내는 데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연습을 늦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했다. 마음을 열어도 되는지를 눈치 보았고, 털어놓은 뒤에는 후회했다. 그러나 한 걸음씩, 아주 작게 내딛는 그 연습 속에서 나는 새로 배우는 중이다. 기대도 된다는 감각을.
기대는 것은, 관계에 뿌리내리는 근육 같은 것이다. 한 번의 시도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수없이 부정당하고, 때로는 무시당하고, 실망당하면서도 다시 한번 마음을 내보내야만 단단해진다. 우리는 그 연습이 없으면, 평생 누구에게도 등을 맡기지 못한 채 살아간다. 관계는 연결이 아니라 균형이다. 누군가에게 너무 기대면 관계는 기울어지고, 너무 멀리 있으면 관계는 끊어진다. 그러니 진짜 관계는 서로 기대면서도 스스로 서 있는 힘을 함께 키워가는 것이다. 이때, 기대는 것은 연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인간다운 용기의 표현이다. 철학자 파울 틸리히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불안은 ‘존재하지 않게 될까 봐’가 아니라 ‘존재하지만 연결되지 않을까 봐’라고 했다. 기대는 것은 그 불안을 넘어서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몸짓이다. 연결을 바라는, 두려워하면서도 용기를 내는 존재의 신호.
나는 이제 기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나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연습. 내가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연습.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온도를 느끼는 연습. 처음에는 불편했고, 지금도 익숙하지 않지만, 그 연습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서 있었고, 너무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 이제는 기대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기대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균형. 그건 내게 가장 어려운 감정의 기술이지만, 가장 배워야 할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기대는 것은, 연습이다. 사랑도 연습이고, 용서도 연습이고, 신뢰도 연습이다. 감정은 단번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실패 속에서 깊어진다. 우리는 실패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기댔다가 실망할 수도 있고, 괜찮지 않다고 말했지만 괜찮은 척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더 시도하는 것,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내미는 것.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관계다. 나는 이제야 그 연습의 중요함을 깨닫고, 늦게나마 시작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천천히, 아주 조금씩만 나아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방향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기대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방식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 믿음도, 지금은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