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

기댈 수 없어도 무너지지 않기. 혼자 있어도 따뜻한 사람되기

by Jung Jay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은 혼자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에게는 그 상태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누군가가 곁에 없는 것이 당연했고, 기대는 일은 선택지가 아니라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었다. 살아오면서 ‘기댄다’는 말을 곱씹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 말이 나에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기대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다잡으며 버티는 삶이 오히려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기댄다는 건 내 안에서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고, 어쩌면 한 번도 허락받지 못했던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는 늘 누군가의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사람들,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기꺼이 등을 내어주었다. 그들이 기댈 수 있도록 나는 나를 벽처럼, 기둥처럼 세웠다. 그렇게 나를 세우고 있을 때, 누구도 나에게 “너는 어디에 기대고 있니?”라고 묻지 않았다.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내가 너무 잘 버티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무도 관심 없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둘 다였을 것이다.


기댈 곳이 없다는 건 감정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슬픔도, 외로움도, 분노도, 안도도, 어디에도 던질 수 없을 때 사람은 그 감정을 오롯이 삼켜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럴 때 종교를 찾는다. 누군가는 신에게, 누군가는 경전에, 누군가는 기도라는 행위에 기대어 자신을 내어놓는다. 나는 종교 대신 자연에 기댔다. 바다, 나무, 하늘, 별, 바람 같은 말 없는 존재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어떤 판단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그 존재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고, 그 침묵이 내겐 위로였다. 그래서 그곳들에 기대고 있는 나를 보며, 힐링이라는 말을 붙여가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단지 ‘기댈 곳이 없어서’ 자연을 닮은 존재들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애써 찾아낸 것뿐이었다.


나는 종종 산사를 찾았다. 등산객들 사이로 비켜 걷다가, 한참을 걷고 숨이 턱에 찰 무렵 오래된 절에 다다르면,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바람을 마셨다. 그 고요함이 좋았고, 그곳에서만큼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 조용한 공간이 내가 허락받은 유일한 기댈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본 기억은 없지만, 오래된 나무기둥에 등을 기대어 쉬던 그 순간의 기억은 있다. 그것은 명백히 감정의 피신처였고, 동시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숨 쉴 틈’이었다.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은 무너지면 안 된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래서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실패하지 말아야 했고, 감정에 함몰되지 말아야 했으며,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망가지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자신의 약점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믿었고, 안심했고, 때로는 의지했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누군가를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은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부러워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부러움은 가능성을 전제로 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품을 수 있는 사람만이 부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러움조차 없었다. 다만, 아주 가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막연한 결핍이 올라오고 있을 뿐이다. 그 결핍이 무엇인지, 어떤 모양인지조차 나는 오래도록 설명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그 말에 열광하고, 강해지라고 서로 다독인다. 그런데 그 말이 이토록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모두가 그 말의 반대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혼자서 걷는 이를 존경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쉴 수 있는 품,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침묵. 그 모든 것이 삶을 버티는 데 필요한 기둥이다. 나에게는 그 기둥이 없었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기둥으로 만들었다. 견고하게, 단단하게, 무너지지 않게. 하지만 단단하다는 건 결국 깨질 위험도 함께 가진다. 탄성이 없는 강함은 결국 한 번에 부서진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그래서 더 조심했고, 더 경계했고, 더 고독했다.


요즘 듣는 노래가 있다. 김필이 부른 줄 알았지만 싸이가 부른 ‘기댈 곳’이라는 노래. 처음 들었을 땐 멜로디만 지나갔지만, 어느 날 문득 그 가사가 귀에 닿는 순간, 가슴 안쪽이 조용히 무너졌다. “괜찮은 척하지만 사는 게 맘 같지는 않네요/저마다의 웃음 뒤엔 아픔이 있어/하지만 아프다고 소리 내고 싶지는 않아요/그래요 나 기댈 곳이 필요해요/그대여 나의 기댈 곳이 돼줘요”라는 가사는 내게 말 건넨 첫 사람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안을 보고 있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기댈 곳이 없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을 인정했다. 나는 지금껏 너무 잘 살아왔다. 아니, 살아내야 했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었다면 조금은 무너질 수 있었겠지만, 나는 무너질 수 없었고, 그 대신 늘 더 잘해야만 했다. 언제나, 최선을 넘어서는 ‘완벽’을 목표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나는 이제야 조용히 되묻는다. 나는 언제쯤 쉴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무것도 해내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기댈 곳이 되어온 삶, 그 한복판에서 나는 한 번도 ‘기대도 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기대도 된다는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허락하는 따뜻한 선언이다. 그 말 하나가 때로는 한 사람을 살게 한다.


지금도 나는 그런 말을 기다리는 중이다. 조급하지 않게, 너무 기대하지도 않게. 그저 조용히, 내 삶의 가장자리에 놓아두고 있다. 누군가 언젠가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네준다면, 나는 말없이 그 곁에 조용히 앉아 등을 기대어 숨을 고를 것이다. 나무기둥에 등을 대고 있던 그날처럼, 하늘 아래 고요히 엎드려 있던 별빛처럼. 나는 말없이 기대어 있는 그 시간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비로소,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배워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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