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부이던 시절도 있다.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일정을 맞추고, 뭐든지 함께하고픈 마음에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챙기던 학창시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위 '단짝'이었던 친구들은 하나둘 자신의 길을 찾아나서고 이젠 동료가 아닌 친구들은 1년에 몇 번,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
다행인 것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한 번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진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는 것!
바로 내가 마음을 준 것만큼 상대도 똑같이 (마음을) 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몇 살 동생이기는 했지만, 인생의 우여곡절을 함께 나눌 좋은 사람을 얻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역시.. 이런 속담이 나온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뒤통수를 하도 쌔게 얻어맞았더니 어안이 벙벙, 아니 인생이 휘청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체감했다. 살면서 늘 만나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단박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 후부터였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겁이 덜컥 났다. 또 상처받을까봐.
그러던 중 언니의 추천으로 넷플릭스 '겨우, 서른(三十而已, 싼쓰얼이)'을 보게 됐다. 평소 중국드라마를 1도 보지 않던 언니의 추천이라 끌리지 않을수 없었다.
'겨우, 서른' 내용은 간단했다. 고대하던 새집으로 이사하는 전업주부 구자, 명품매장 미실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왕만니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 샤오친, 이 세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후 나누게 된 삶의 이야기다.
단순해보였지만, 그 삶을 풀어내는 방식은 참으로 많은 위로와 힐링을 줬다. 막장극에서나 볼 법한 억지 전개는 없었다. 다만 실제의 삶이 그렇듯 구자, 왕만니, 샤오친의 삶에도 매 순간 예기치 않은 사건과 상황들이 찾아왔고, 이들은 자신에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래. 그럴수도 있지'라는, 왜 이 사람이 저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진정한 '역지사지'를 엿보게 했다. 나의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지만, 사람은 저마다 말하지 못한 사정과 상황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내 등에 배신의 칼을 꽂았던 그 후배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밋밋할 수 있지만 물흐르듯 흘러가는 삶의 방식을 잔잔히 보여주는 '겨우, 서른'의 전개는 많은 생각할 거리와 인생의 지침을 안겨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웠던 점 하나는 바로 인생이 휘청할 정도의 큰 시련을 겪을 때, 묵묵히 내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구자, 왕만니 그리고 샤오친 같은 사람이 과연 내 옆에는 얼마나 있을까. 또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을까.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다고 상처받은 나 자신을 동정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 내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도록 해봐야겠다. 그러다보면 언제가 소리소문없이 내 곁에 있는 구자, 왕만니 그리고 샤오친을 발견하지 않을까..